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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른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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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른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

입력
2006.11.2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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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씨가 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이와 더불어 사형제 폐지론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제시하는 사형제 폐지론의 논리는 그리 강하지 않다. 오판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사형제 존치론자들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 잡혀서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도 사형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사형제 폐지론의 논리를 완전하게 해 줄 텐데, 이것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 <우행시> 와 사형제폐지론의 논리

<우행시> 는 그보다 더 큰 아젠다, 즉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라는 아젠다를 제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과 그 다른 세계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정의만이 아니라 보살핌과 배려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계, 잘못된 행위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원인까지도 살펴보는 세계를 만들자는 주장이 더 근본적으로 깔려 있다는 말이다.

'지구'와 '세계'는 다른 말이다. 지구는 자연물이고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없어져도 지구는 있을 수 있지만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세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이런 뜻에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 내 존재'라고 규정했다.

이 책의 첫머리에 "할렘은 파크 에비뉴의 그림자"라는 말이 인용된다. 부자들의 동네인 파크 에비뉴나 가난한 흑인가 할렘은 모두 뉴욕시에 있는 것이니, 이를 우리 식으로 바꾸면 "난곡의 달동네는 타워팰리스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아니면 "룸살롱은 강남 오피스빌딩의 그림자"라고나 할까.

최근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를 놓고 여당 지도자가 "이제 부동산 문제는 정권적 차원을 넘어서서 체제에 대한 위협과 위기"라고 말했을 때 그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근본적 붕괴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뿐이겠는가?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는 어떤가? 왜 수많은 사람들이 거칠게 반대의 몸짓을 토하겠는가?

<우행시> 에는 이런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사형수를 사형에 처하게 만든 것은 그의 폭력적 행위 때문이지만, 그를 사형수로 만든 것은 다른 폭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른 폭력'의 근원에 대한 물음은 바로 사회 체제 문제로 나아간다. 사형수 윤수와 그의 눈먼 동생을 거칠게 내몰아 버린 아버지의 폭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공지영씨는 그 이야기를 길게 쓰진 않았지만, 그것이 '파크 에비뉴'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 세계를 슬며시 바꾸는 힘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돈 안 되는 책이나 논문을 쓰는 인문학자나 철학자들,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처럼 세계의 분쟁지를 찾아가 세계의 모순에 몸 바치는 사람들, 그리고 사형제 폐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이 모두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이 사람들은, 남의 일이 어찌 되어 가는지 도무지 모르면서 제 일에만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를 슬며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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