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 가는 길, 경복궁 담장과 마주 보고 있는 통의동 골목에서 미술작가들이 작은 사건을 일으켰다. 이 동네에 있는 작은 화랑 겸 미술연구소 쿤스트독이 기획한 <통의동 골목길 프로젝트> 다. 12명의 작가가 여기에 참여해 재개발을 앞둔 이 동네 빈 건물 세 채를 작업실 삼아 9월부터 두 달 가까이 머물면서 작품을 만들어 이 집들과 골목길에 전시 중이다. 통의동>
높은 건물이 없는 이 동네의 좁은 골목 곳곳에 전에 못 보던 것들이 등장했다. 낙서하듯 시를 갈겨쓴 현수막(최익진 작), 앉으면 부서질 골판지 의자(손한샘 작) 등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놀이터, 주택 담장, 골목길 여기저기에 있다. 작가들은 미술이 아주 멀고 높이 있는 게 아님을 말하고 싶어한다.
불탄 집 대문 앞에 전시하려던 박진호의 그림 <푸른 문> 은 집 주인의 반대로 도로 변에 나앉았다. 통의동 5-3번지 백송길 골목에는 붉은 카펫이 깔렸다. 골목 입구 좌우에는 경호용 오토바이를 탄 경찰관 인형이 놓여있다. <일상의 기념> 이라는 고인숙의 작품이다. 청와대가 코 앞이라 어느 동네보다 경찰관이 많은 이 동네의 성격을 드러낸 작품이다. 작가는 실제 경찰관이 골목 앞에 서 있기를 바랐지만, 경찰이 거절했다고 한다. 일상의> 푸른>
경찰이 높은 사람만 경호하란 법 있냐, 민간인도 경호해달라는 요청에, 개인 경호는 안 한다는 답변을 들었단다. 주민들은 모형 사이드카의 경호를 받으며 기분 좋게 붉은 카펫을 밟고 다니고 있다. 또다른 작가 권남희가 건널목 신호등 위에 설치한 붉은 표지판 <고요한 세상> 은 운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철거했고, 가로등에 매단 것 하나만 남아서 오가는 행인들이 “저게 뭐지 ?” 하고 보게 만든다. 고요한>
작가들의 작업실은 좁은 복도에 작은 방들이 늘어선 2층짜리 옛 보안여관, 그 옆에 바로 붙어있는 한옥과 양옥이다. 보안여관 입구, 낮고 어둡고 좁은 문 안에는 낮게 드리운 알전구가 빛나고 벽에는 사진 쪼가리가, 그 앞에는 비디오가 켜져 있다(우금화 작). 보안여관 옆 한옥 방향 골목에는 독일 작가 베른트 할프헤어가 담장에 스프레이 낙서 그림 네 장을 그려놨다. 그 중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등장하는 것은 더러 동네 노인들로부터 지우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전시는 26일까지 한다. 쿤스트독은 골목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표시한 지도를 나눠주고 있다. (02)722-8897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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