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미국 정부 수뇌부가 앞 다퉈 중동을 방문한다. ‘네오콘’의 대부인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 퇴진 이후 강경 일변도의 이라크 정책에서 변화를 모색해온 미국의 구상이 피에르 게마일 레바논 산업장관의 피살로 타격을 받게 되자 해법을 찾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받아들여진다.
부시 대통령은 29, 30일 요르단 암만에서 악화하는 이라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회담을 갖는다. 앞서 체니 부통령은 25일 사우디 아라비아를 방문, 압둘라 국왕과 중동문제 진전 방안을 논의한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도 부시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사해 휴양지에서 열리는 ‘중동지역 민주주의 발전 컨퍼런스’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같은 행보들은 게마일 장관의 피살 파장이 어느쪽으로 튈지 모른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사건이 자칫 레바논의 종파간 내전으로 비화하면 미국의 외교적 협상을 통한 이라크 문제 해결 노력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라크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양국 정상이 다음주에 회담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정부는 중간선거 참패 후 안팎에서 시리아와 이란을 지렛대로 이라크문제를 풀라는 압박을 받아 왔다. 초당적인 ‘이라크 연구위원회’의 건의사항도 이 방안이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문제의 해결은 이슬람 종파간 화해가 전제가 돼야 한다. 이라크 국경 너머로까지 번지고 있는 종파간 갈등을 막기위해선 이라크 내 시아파와 수니파 무장세력를 지원하고 있는 이란과 시리아를 포용, 적극 활용해야만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같은 포용론은 게마일 장관의 피살사건으로 정책으로 채택되기도 전에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레바논 내 반 시리아계는 게마일 장관 사건의 배후로 시리아를 지목하고 있다. 물론 시리아는 “이라크 문제를 놓고 협력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시리아와 미국의 해빙무드를 막으려는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며 펄쩍 뛰고 있다.
시리아가 배후로 몰릴 경우 미국 협상론자의 입지는 극히 좁아지고 체니 등 강경론자의 목소리가 커질 게 뻔하다. 부시 대통령은 22일 레바논의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게마일 장관의 피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배후 인물과 세력이 누구인지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이날 레바논 정부의 게마일 장관 피살 사건에 대한 유엔의 조사 요청을 승인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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