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버지의 영정을 든 모습으로 온 국민의 눈물을 자아냈던 ‘오월의 꼬마’ 조천호(31ㆍ광주시청 총무과)씨가 26일 결혼한다.
당시 만 5세 나이로 영문도 모른 채 임시 안치된 아버지 관 앞에서 상복을 입고 영정에 턱을 괴고 있는 영롱한 눈빛의 그의 모습은 광주의 비극을 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5ㆍ18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명예를 회복했듯 그는 시대의 아픔을 딛고 성장해 가장이 된다.
동반자는 지난해 가을 지인의 소개로 만난 고은아(27ㆍ회사원)씨다. 두 사람의 결혼식(26일) 주례는 5ㆍ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낸 조비오(68) 신부가 맡는다.
조씨는 예비신부의 ‘모든 것이 맘에 든다”면서도 말을 아꼈다. 그는 어린시절 다니던 성당의 주임신부이자 평소 존경해온 조 신부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갔더니 “참 세월이 빠르군요”라며 격려해 주었다고 전했다.
그는 80년 5월 21일 금남로 시위에 나섰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조사천(당시 34세)씨의 2남1녀 중 장남이다. 어머니 정동순(53)씨와 누나,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조씨는 군 제대 후 98년 6월부터 5ㆍ18묘지관리사무소에서 일용직으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시실 안내와 관리사무소 행정업무를 맡으며 ‘5ㆍ18전도사’로 활약했다.
2000년 3월 5ㆍ18묘지를 방문한 최인기 당시 행정자치부 장관이 그의 근황을 전해 듣고 시 관계자에게 특채를 권유해 정식 공무원이 됐다. 일용직으로 근무할 때 주경야독으로 조선이공대 건축설비과를 졸업했다.
조씨는 2003년 9월 5ㆍ18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돼 관리업무가 보훈처로 이관되면서 광주시청(기능9급)으로 자리를 옮겨 요즘은 승진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는 해마다 5월이면 쇄도하는 언론 인터뷰에서 “5ㆍ18묘지에 잠든 모든 영령들이 가족처럼 느껴진다”며 “5ㆍ18정신은 생활 속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나눔정신에 있다”는 말을 자주했지만, 지난해부터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조씨는 “온 국민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성장한 만큼 ‘잘 살겠습니다’”고 다짐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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