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최대 멕시코식 패스트 푸드 체인점인 타코벨은 최근 자사의 식품에 트랜스지방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는 “2년간의 검토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소비자 단체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으며 다른 패스트 푸드 업체들에도 트랜스 지방을 축출하는 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과체중 인구가 기아 인구를 초과하는 시대인 지금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대(對) 트랜스지방 전쟁’이 한창이다. 그 동안 마가린과 쇼트닝 등은 식물성 기름으로 이뤄져 몸에 해롭지 않다고 인식돼왔다. 그러나 이들로 조리한 바삭한 튀김 음식에 주로 담겨 있는 트랜스지방이 사실 암과 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소비자들은 반(反) 패스트 푸드 운동을 전개했고 결국 타코벨과 같은 대형 식품업체들이 백기를 들기 시작했다.
세계는 지금 반 트랜스지방 전쟁
타코벨에 앞서 미국의 거대 식품 회사인 크래프트(Kraft)도 트랜스지방을 제거한 쿠키를 선보였으며 KFC는 내년 4월까지 미국 내 5,500개 체인점에서 사용하는 식용유를 모두 트랜스지방이 없는 콩기름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함께 맥도널드도 2008년까지 유럽의 체인점이 사용하는 기름을 올레인산과 해바라기 씨 기름을 혼합한 대체유로 바꿔 제품의 트랜스지방 함유량을 기존 10%에서 2%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맥도널드의 경쟁사인 웬디스 인터내셔널도 지난 여름 트랜스지방을 완전히 제거한 감자튀김용 기름을 내놓았다. 미국 뉴욕시는 이러한 기업들의 분위기에 불을 당기기 위해 아예 트랜스지방이 들어간 음식의 식당 내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국가적으로 트랜스지방 함유 음식을 규제하는 분위기도 이미 정착 단계다. 미국은 미국의학원이 2002년 트랜스지방의 위험을 경고한 이후 올해 1월부터 모든 가공식품에 트랜스지방 함유량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캐나다도 지난해 12월부터 함량 표시를 의무화했다. 덴마크는 한 술 더 떠서 2004년 1월부터 가공식품에 함유된 지방 중 트랜스지방 함량이 2% 이상인 경우에는 유통을 금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섭취열량 중 트랜스지방에서 기인하는 열량이 1%를 넘지 않도록 권고(2,000㎉ 기준 2.2g)하고 있다.
심장병과 암을 유발하는 트랜스지방
미국 하버드대 의대가 1999년 내놓은 ‘트랜스지방과 관상동맥질환’ 보고서는 트랜스지방 대신 불포화지방을 섭취한다면 미국에서만 연 3만~10만명이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보고서는 트랜스지방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포화지방의 2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한 의학학회지는 트랜스지방 섭취가 2% 늘어나면 심장병 발생 위험이 28%까지 증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트랜스지방의 악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의학적으로 트랜스지방이 각종 암 등을 유발하는 기전이 정확히 증명된 바는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가 유통금지 등 강력한 제재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역학조사를 통해 트랜스지방과 심혈관계 질환 유발의 밀접한 관계가 확인됐다”며 “알레르기, 면역력 저하, 암, 당뇨 등 다른 질병과의 연관성도 제기됐으나 아직까지 뚜렷이 증명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심혈관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확인된 포화지방보다 트랜스지방의 악영향이 크다는 정도는 입증된 만큼 식생활 조절로 트랜스지방을 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패스트 푸드와 특히 트랜스지방이 많은 전자레인지용 팝콘 등의 섭취량을 줄이고 토스트를 만들 때 마가린 대신 버터를 사용하라” 며 “한번 튀긴 기름을 다시 사용하면 열이 여러 차례 가해져 트랜스 지방이 더 많이 생기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트랜스지방 금지 추진
우리 정부도 트랜스지방을 식탁에서 몰아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단 내년 12월부터 빵, 과자, 음료 등에 당류와 트랜스지방 및 콜레스테롤 함유량 표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트랜스지방량이 소비자에게 적나라하게 공개돼 식품업계 차원에서 미국과 같은 자정운동이 촉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식품업계는 우선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따라 패스트 푸드 조리에 쓰이는 기름을 트랜스지방이 적게 함유된 팜유, 올리브유 등으로 바꾸고 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그 동안 사용해온 대두경화유는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30%에 달했다” 며 “WHO의 권장량에 근접할 수 있도록 무경화 액체 식물성 팜유를 6월부터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청 박혜경 영양평가팀장은 “트랜스지방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업계가 쓰고있는 팜유 등은 대신 포화지방을 많이 담고 있어 건강에 이롭다고 볼 수는 없다” 며 “각 기업이 연구개발비를 많이 투자해 실제로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기름을 조리에 사용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팀장은 “내년부터 식품의 성분을 포장을 통해 공개하면 기업의 자구노력이 뒤따르겠지만 그래도 국제수준의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달성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트랜스지방 함유 식품 유통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트랜스지방이란
지방은 크게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으로 나뉜다. 포화지방은 주로 동물성지방에, 불포화지방은 식물성지방에 많이 있다. 불포화지방은 혈관을 청소하는 좋은 콜레스테롤(HDL)의 수치를 높이는 반면 포화지방은 혈관을 좁게 만들어 고지혈증, 동맥경화 등 질환을 유발하는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수치를 끌어올린다.
이처럼 불포화지방이 몸에 보다 이롭기 때문에 애초에 많은 식품업체가 이를 식품가공에 이용하려 했지만 불포화지방은 상온에서 액체상태이기 때문에 운반 및 저장이 매우 불편하다는 한계에 부딪친다. 그래서 불포화지방이 딱딱한 성질을 갖도록 변질을 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수소를 첨가하게 되고 결국 지방이 고체로 변하는 대신 불포화지방이 포화지방으로 변질된다.
문제는 이러면서 자연계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트랜스지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불포화지방을 딱딱하게 만드는 과정이 지방 안의 수소(H) 위치를 왜곡하면서 생산되는데 인체는 이 물질에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다.
인체가 이러한 트랜스지방을 필수지방산으로 인식해 세포막과 호르몬, 각종 효소 등 생체조절물질이 엉망진창이 된다. 이는 면역력 저하를 가져오고 종국적으로 암과 각종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트랜스지방은 마가린, 쇼트닝, 전자레인지용 팝콘에 특히 많이 들어있다.
▲ 외국의 트랜스지방 식품규제
세계보건기구(WHO) : 하루 섭취열량 중 트랜스지방에서 기인되는 열량이 1%를 넘지 않도록 권고(2,000㎉ 기준시 트랜스지방 약 2.2g)
덴마크: 2004년 1월 가공식품에 함유된 지방 중 트랜스지방 함량이 2%이상인 경우 유통판매 금지
미국: 2006년 1월부터 영양표시항목에 트랜스지방 함량 표시
캐나다: 2005년 12월부터 영양표시항목에 트랜스지방 함량 표시
일본: 아직까지 규제조치 없음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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