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억제를 겨냥한 정교한 외과수술일까, 다이아몬드를 망치로 커팅하는 것 같은 후진적 시도일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6년만에 일부 예금에 대해 지급준비율을 인상하기로 하자, 부동산 가격 안정의 보루를 자처하며 금리인상 대신 지준율 인상이란 예상외의 칼을 빼든 한은의 결정에 대해 전문가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23일 금통위는 정례회의를 열고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식예금 등에 대해 지급준비율을 현행 5.0%에서 7.0%로 인상키로 했다. 또 장기 저축성예금의 지준율은 현행 1.0%에서 0.0%로 인하했다. 이 조치는 12월23일부터 시행된다. 한은의 지급준비금 적립방식에 따르면 한달을 상반기와 하반기 둘로 나눠 상반기 예금은 8일부터, 하반기 예금은 23일부터 지불준비금을 적립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지불준비율 인상효과는 다음달 16일부터 발휘된다. 이번 조치에 따라 예상되는 유동성 감소량은 총 5조원 내외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미칠 파급 효과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인정했듯이 지준율 인상이 16년간 사용된 적이 없을 정도로 화석화된 조치인 탓에 실제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실증적 조사가 전무하다. 결국 추상적 논리로 여파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효과를 놓고 전문가들의 예상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지준율 인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쪽에서는 이번 조치가 현재 문제가 되는 주택담보대출만을 억제하는 정교한 외과수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한국경제연구원 안순권 연구위원은 “지준율 인상은 은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금융소비자에 대한 충격은 상대적으로 강도가 적을 뿐 아니라, 한은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시중은행이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기업대출 금리를 올리기보다는 주택담보 대출 금리만을 올리는 쪽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이 “지금까지 금융당국의 구두개입을 통해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시행돼 왔다면, 이번 한은의 지준율 인상은 이를 공식화한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미 시중은행들이 한은의 의중을 읽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주택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의 추가는 단기적으로 매수세를 위축시켜 결국 가격하락을 이끌 것이란 주장이다.
반면, 지준율 조작정책이 금융시장 전체의 유동성수준에 미치는 영향이 지나치게 강력하고 지속적이어서 최근 중앙은행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후진적 정책이란 의견도 있다. 이는 한은이 자체 영문 홈페이지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이 홈페이지는 또 지준율 조작은 ‘다이아몬드를 망치로 커팅하려는 시도’처럼 세련되지 못한 정책수단이라고 폄하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도 “지준율 인상은 시장이 예측하기 불가능하고 통화량을 직접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 충격이 훨씬 강할 것”이라며 “더욱이 향후 한은의 은행에 대한 통제가 시장을 통한 간접방식에서 직접통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비춰져 친시장 통화정책의 후퇴 신호로 여기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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