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소설에 보면, 생각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잃어버린 시계가 어디에 있을까 찾다가 아마 서랍 속에 있을 것이라고 골똘하게 생각한 후 서랍을 뒤지면 거기에 시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나중에 딴 곳에서 시계를 찾게 되면 지상에는 원래 갖고 있던 시계와 나중에 생각으로 만들어진 시계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셈이다.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만든 모든 물건과 제도와 문명은 생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행기를 생각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주식회사라는 제도를 생각했기 때문에 주식회사가 생겼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독창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창의력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동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독창성은 발전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신상품의 개발이나 시스템의 개선이나 새로운 이윤의 창출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는 독창성이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고정관념을 파괴하라" 또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같은 말도 결국은 독창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설고 엉뚱하고 새롭다고 해서 모두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이치에 닿지 않는 황당한 생각과 독창적인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다. 독창적인 것이란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요소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케네스 크레이크라는 사람은 독창적인 생각이 가능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가능성이 희박한 유추관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독창적인 생각이란, 낡은 생각들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술논문은 독창성을 생명으로 한다. 논문이란 거칠게 말해서 단 한 줄의 독창적인 결론을 위해서 새롭게 조합한 수십 페이지의 낡은 지식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논문 쓰기가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인문학의 경우는 독창성을 추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독창적인 논문을 쓰는 일 이상으로 과거의 학문적 전통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작업이 인문학에서는 필요하다.
지나치게 독창적인 논문을 강요하는 풍토가 오늘날 인문학을 변질시키는 요인일 수도 있다. 독창성이란 희귀하게 나오는 것이지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 독창성 강요가 인문학 변질시켜
그런데 한 대학에서는 독창성을 논술시험에서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겠다고 한다. 독창성을 갖춘 논술이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해진 문제의 틀 안에서 학생들이 독창성 있는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금까지 나온 대입논술문제들을 보면 몇 가지 유형의 생각이 가능한 하나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수험생들이 그 틀 안에서 어떻게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논술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논제에 대한 이해력과 논리적 사유능력 그리고 표현력 정도가 아닐까 한다. 엉터리 독창성의 난무는 논술답안지만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도 경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남호ㆍ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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