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은 그리 오래 묵은 이슈는 아니다. 문민정부 이래 민주화가 어느 정도 가시화될 즈음에야 비로소 사법개혁이라는 정치 아젠다는 시민의 목소리에 온전히 담길 수 있었다.
법이 억압과 착취의 폭력 앞에서 하냥 무력하였던 당시의 사법개혁은 결코 국민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법을 관료주의와 결합시켜 권력순응적인 것으로 개조하거나, 혹은 법조직역 확대 등의 명분으로 시장에 충실한 사법제도를 만드는 정도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 최근의 사법개혁 논의들은 의당히 사법권력을 시민의 것으로 되돌리는 작업에 집중된다. 시민사회는 "사법도 서비스다"라는 명제를 내세우며 시민이 주체가 되는 법치의 실천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사법권력을 가로채는 막강한 법조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법치를 확보함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되, 이 과정에서 과거 정치권력의 보조자이자 수혜자였던 법조집단이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변형되는 것은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개혁에 저항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개혁의 논의과정을 장악하고 그 방향을 왜곡하기조차 하였다.
최근 사개추위가 마련한 사법개혁안은 이런 현실에 대해 나름의 처방과 전망을 제시한다. 배심제 등 국민참여형 사법제도는 사법의 주인이 우리임을 선언하며, 공판중심주의는 밀실재판의 관행을 깨치고 시민들에게 열린 법정에서 사법정의를 모색하도록 한다.
또는 사법시험 - 사법연수원을 통해 구축되는 법조관료주의를 과감하게 털어내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시민이 주축이 되는 사법과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사법개혁안은 완벽하지 않다. 그것은 더러 사법관료들의 이해타산을 뭉쳐낸 것이거나, 혹은 비법조인 위원들의 방임 하에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법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개혁안들은 사법을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민주적 법치를 기본전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제2의 사법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 전략적 토대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이에 최근 정치권의 비열한 정쟁 혹은 법ㆍ검의 치졸한 다툼으로 19개나 되는 사법개혁 법률안들이 국회에서 하염없이 표류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시민사회가 논의하고 합의해 왔던 사법개혁의 과제들이 무위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사법이 경제권력의 지배수단으로 전락하여 신자유주의적 억압의 첨병으로 변모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국민의 사법, 민주적 법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이들 사법개혁안은 그 최후의 방파제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실제 사법개혁은 그동안의 민주화 여정을 한 단계 마무리하는 의미를 가진다. 권력의 진정한 주인이 국민임을 공식적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디딤돌이 이번의 사법개혁 법률안들이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너무도 무거운 까닭은 여기 있다.
사법관료들이 가로채고 있는 민주화의 성과를 이제라도 국민에게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 각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이다.
한상희ㆍ건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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