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뮤지컬 전성시대다. 단 무대에서만.
왕성한 소화력으로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를 조폭 영화로 재창조하는 등 장르의 토착화에 남다른 재주를 지닌 충무로가 유일하게 정착시키지 못한 장르가 바로 뮤지컬. 그러나 척박한 한국 뮤지컬 영화 역사에서 올해는 신기원으로 기록될 만한 해다. 뮤지컬 요소를 과감히 도입한 <다세포 소녀> 나 <구미호 가족> 이 잇달아 주류 무대로의 진입을 시도해서가 아니다. 인디 정신으로 무장하고 겁도 없이 관객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삼거리 극장> 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삼거리> 구미호> 다세포>
관객들이 <삼거리 극장> 을 찾아가기 전에 버려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뮤지컬은 대형 군무(群舞)와 늘씬한 남녀 배우의 등장이 필수라는 편견, 영화는 사실성을 지녀야 한다는 고지식함, 앞뒤를 정교히 맞춰가며 명확한 결론을 도출 시키려는 논리적 사고 등. 이들을 대신할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관객모독’으로 비쳐질 장면이 눈앞에 닥쳐도 흔쾌히 즐기겠다는 열린 사고가 그것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통 큰’ 생각으로 <삼거리 극장> 의 기기묘묘한 세상으로 들어서면 120분이 즐겁다. 삼거리> 삼거리>
이야기 구조는 의도적이라 할 만큼 헐겁다. 활동사진을 보고싶다며 가출한 할머니를 찾아 나선 소단(김꽃비)은 우연히 낡은 극장에 다다른다. 매표소 직원으로 취직한 소단은 불 꺼진 상영관에서 혼령들과 만나고 그들의 요절복통 세상 속으로 빠져든다.
<삼거리 극장> 의 매력은 일상의 전복과 세상의 모든 경계 허물기에 있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뭉개고,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시간의 불가역성조차 거부한다. 인간이 혼령이고 혼령이 인간이 되는 기이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 시공간을 재구성한다. 그 시공간 안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와 그리스 신화가 교차하고, <록키 호러 픽처 쇼> 의 괴이함이 공존한다. ‘X싸고 있네’ ‘이런 천하의 XXX를 봤나’ 등 비어와 육두문자를 서슴지 않은 가사가 인상적인 8곡의 노래는 이 ‘환상특급’의 가속도를 높인다. 쉽게 동화하기 어렵지만 일단 <삼거리 극장> 리듬에 몸을 실으면 포복절도할 웃음이 화수분처럼 쏟아진다. 삼거리> 록키> 이상한> 삼거리>
충무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 체험까지 선사하는 영화는 한국 최초의 괴수영화(물론 허구다)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이 상영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소머리 인간…’은 영화 속에서 과거와 현실이 조우하고 산 자와 죽은 자를 대면케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며 젊은 상상력을 마음껏 폭발시킨다.
8억원이라는 제작비가 믿어지지 않는 작품이지만 저예산의 한계가 빚은 투박함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계수 감독의 데뷔작. 23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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