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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소설가 권현숙이 독자 수경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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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소설가 권현숙이 독자 수경 씨에게

입력
2006.11.2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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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씨.

그렇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동화책의 글씨 위에다 점자를 일일이 오려 붙였다고요. 정말 그러네요. 그렇게 하면 여느 엄마들처럼 예쁜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줄 수 있겠네요.

“아이들 동화책을 사도 다른 엄마들처럼 내가 직접 읽어줄 수가 없고, 점자책으로는 아이의 흥미를 끌 예쁜 그림들을 함께 보여줄 수가 없어서 너무 속상해요.”

내 머릿속에서도 그 문제가 뱅뱅 돌고 있었는데 수경 씨 혼자서 멋지게 해결했군요.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어렵게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내 맘이 다 놓이네요. 이제 겨우 한글을 깨우친 일곱 살 배기 하늘이가 동화책의 글씨를 읽어주고, 엄마는 점자를 찍어서 붙이고, 그렇게 하여 세상에 단 한 권뿐인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정경이 눈에 보이는 듯해요. 정말 ‘우리나라에 유일한 가내 특수 출판사’라고 할 만 하네요.

“두꺼운 테이프에 점자를 찍느라 손이 부르터서 수저를 들기도 힘들지만 내가 보지 못하는 예쁜 그림들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며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왜 안 그렇겠어요. 나도 이렇게 뿌듯한걸요. 그 아름다운 그림책들, 제게도 보여주실 거죠? 간혹 책을 잘 읽었다고 메일이나 전화를 주시는 따뜻한 분들이 계세요. 수경 씨도 그런 독자 중에 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오래, 서로 속내를 다 내보이면서 친구로 지내는 경우는 흔치 않지요. 우리가 안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첫 통화를 하고 이런 글을 주셨어요.

“처음으로 마음이 통하는 즐거운 대화를 해서 그런지 많이 설레었어요. 늘 제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고…, 상대방은 뭔가 도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나는 그것 때문에 또 부담스럽고…. 그런데 전화기를 놓고 보니 전혀 그런 부담 없이 서로 대등하게 진심을 주고 받는 대화를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처음이에요, 이런 경험.”

수경 씨가 얼마나 큰 벽을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어요. 그리고 또 <빨간 구두> 나 <할머니와 의사> 처럼 보지 못하는 사람을 속이는 내용의 동화가 많다고 속상해 하셨지요. 보지 못할 뿐이지 어리석은 건 아니라는 항변이 느껴졌어요. 수경 씨가 아이 둘 키우면서 살림하는 걸 못 봐서들 그래요. 알면 동정은커녕 주눅들 텐데, 나처럼. 좋은 찻집 봐두었어요. 만나서 실컷 수다 떨고 노래방에도 가고 그럽시다. 그럼.

현숙 2006. 10. 29

■ 김다은의 우체통

친구가 된 맹인 독자와 작가

보통 눈으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손(점자)이나 귀로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권현숙 씨는 맹인 도서관 ‘오디오 북’에서 <루마니아의 연인> 을 5번이나 읽었다는 수경 씨를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감동한 두 사람은 4년째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수경 씨는 여느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못한다. 그 문제점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지켜본 권 씨는 “그녀는 나보다 용감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글도 잘 쓰니 언젠가 작가가 될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의 회원인 권 씨는 11월28일에 있을 편지 낭독회에 수경 씨를 초대했고, 수경 씨는 녹음이 아니라 생생한 친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청주에서 올라올 예정이다. 소설가 친구의 목소리, 문학의 목소리!

김다은(소설가ㆍ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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