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20일 세계 외환시장에서 유로화에 대한 엔화의 가치는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이날 엔ㆍ유로 환율은 장중 한때 151.67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전거래일 대비 0.22엔(0.15%) 오른 151.27엔으로 마감했다. 21일에도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공개한 10월 금융정책결정위원회 의사록에서 ‘점진적인’ 수준의 금리 인상이 시사돼 엔화 가치는 또다시 떨어졌다. 일본은 지난달 12, 13일 열린 위원회에서 3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해 현재 세계 최저 수준인 0.2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 20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선진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은 20일 폭락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이 회담에서 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 경제의 부흥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인플레 압력에 직면해 있지 않다”며 올해 안에 더 이상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반면 역시 오랜만에 눈에 띄는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 압력에 대응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양 통화간 금리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G20 회의에서 엔_캐리 트레이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지 않은 것도 엔화 하락 요인이 됐다. 엔_캐리 트레이드란 국제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이자가 싼 엔화를 대출 받아 이자가 높은 다른 국가의 채권이나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투자자들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세계 시장에 엔화 공급이 많아져 엔화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 정책을 좀더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분위기 반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내년 4월 일본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 등을 앞두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은행에 금리인상 억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지만 관료의 힘이 막강한 일본에서 정부의 입김을 완전히 뿌리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같은 ‘엔화 버블’(지나친 엔화 저평가를 이르는 신조어)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20일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를 선호하고 있지만 이는 달러 대비 엔화 강세를 용인한 85년 ‘프라자 합의’의 결과로 ‘잃어버린 10년’을 겪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비정상적인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그 이유로 중국 뉴질랜드 러시아 스위스 등 세계 중앙은행들이 달러화 대신 엔화를 사들이고 있다는 점과 미국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이 ‘오일 머니’를 미국이 아닌 일본 등으로 유입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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