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이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과도한 시청률 경쟁이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적정한 시청률은 필요하지만, 최근 사례들은 시청률 경쟁이 과열돼 자율적 제어장치가 사라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우리의 방송이 지향점을 잃고 있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방송사별로 최근 사례를 살펴보자. KBS 강수정 아나운서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런데 강 전 아나운서가 퇴직 전까지 맡았던 <연예가 중계> 와 <무한지대 큐> 의 담당 PD는 그가 계속 진행해 줄 것을 희망했다고 한다. PD들은 자존심도 없을까. 무한지대> 연예가>
KBS 아나운서가 싫다고 그만둔 사람에게 왜 진행을 맡아달라고 했을까. KBS에는 사람이 없는가. 그가 우여곡절 끝에 그 프로그램에서 손을 떼게 됐다. PD들 입장에서는 다른 진행자를 내세우면 시청률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조직의 안정성은 상처를 입었다.
MBC는 인기 사극 <주몽> 을 엿가락 늘이듯 연장 방송키로 방침을 정했다. 당초 60회에서 25회나 더 한다고 한다. 주연 배우 송일국이나 대본을 맡은 주 작가가 반대한다는데도 밀어붙일 심산이다. 주몽>
신종인 부사장이 직접 전남 나주의 촬영장을 찾아가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주몽의 높은 시청률은 회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광고 수주를 의미한다. 장사가 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시청자와의 약속은 쉽게 깰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줬다.
SBS는 시청률 조사기관 중의 하나인 TNS미디어코리아와 시청률 조작 공방을 벌이고 있다. SBS는 TNS에 근무했던 한 직원이 제공한 문건 내용을 토대로, TNS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600여건의 시청률을 조작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TNS측은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실체적 진실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철저한 들러리였다. 방송사가 시청률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송계 관행을 보면, 시청률은 제작 PD에게 일종의 살생부처럼 여겨진다. 매일 아침 발표되는 전날 프로그램 시청률이 마치 수능 성적표처럼 PD의 제작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지 오래다. 시청률 1%, 2% 포인트 등락에 희비가 엇갈린다.
담당 PD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봄 가을 프로그램 개편에서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은 조기에 막을 내리거나 한가한 시간대로 옮기는 운명에 처한다. 반면 인기 연예인에게는 회당 수천 만원의 출연료도 아깝지 않다. 인기 연예인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청률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2003년 일본의 니혼TV에서 발생한 시청률 조작 사건에서 알 수 있다. 당시 니혼TV의 한 PD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시청률 조사 가구를 알아낸 뒤 그 가정에 돈을 주고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보도록 했다. 결국 사태의 전말이 알려지면서 PD는 해고되고, 경영진도 엄중 문책을 받았다. 방송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방송의 시청률 경쟁은 도를 넘은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선정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다. KBS는 시청률에 초연할 수 있는 수신료 수입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른 방송도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규제에 의해 일정 부분 광고수입이 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방송은 제 갈 길을 잃고 있다. 방송 경영진은 취임 초 시청자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약속하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면 시청률 경쟁을 독려하는 야전사령관이 되고 마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방송사도 기업이기 때문에 상업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방송사에 기대하는 중요한 덕목은 공영성이다.
공영성의 덕목은 고품격 프로그램, 다양성, 상업적 영향력으로부터의 독립, 시민 커뮤니케이션의 충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지금처럼 방송사가 시청률에 매몰돼 공영성을 상실해 간다면, 단기적으로는 상업적 이익을 확보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언론의 도덕성, 신뢰성, 공익성이라는 더 중요한 가치가 훼손될 것이다.
방송의 상업적 성공은 공영성 확보를 위한 필요조건일뿐이다.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지금처럼 상업성을 과도하게 추구해 나간다면, 그것은 결국 방송의 정체성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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