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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검찰과 법원은 싸움을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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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검찰과 법원은 싸움을 치워라

입력
2006.11.2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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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시절 검찰과 법원은 한 배를 탔다. 견제와 제어의 원리가 작동해야 할 두 국가기관 사이에서 암묵적 거래는 흔한 일이었다. 예컨대 배짱 두둑하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판사가 검사가 청구한 시국사건 영장을 기각하기라도 치면 검찰은 어김없이 영장을 다시 청구해 받아내곤 했다. 밤중에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집으로 가 기각된 영장을 재발부받은 일화는 검찰의 영웅담으로 전해져 왔다.

특별수사 사건이나 일반형사 사건에서는 다소의 긴장 관계가 유지되긴 했다. 그러나 검사가 두세 번씩 영장을 청구하거나 법원이 검사가 직접 수사한 사건의 영장을 기각하는 일은 가뭄의 콩 나듯 했다.

이 시대 판ㆍ검사의 공적 관계를 지배하는 힘은 정권의 통제력이었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은 권력을 효율적으로 휘두르기 위해 검찰과 법원을 협력의 틀 안에 묶어둘 필요가 있었다. 구미에 맞는 인사를 두 기관의 요직에 앉혀 서로 교감하게 하는 것은 적절한 통제 수단이었다.

때로 권력의 통제에 항거하는 몸짓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권력의 요구에 순응해온 게 우리의 법원이고 검찰이었다. 두 기관 사이에 갈등의 조짐이 보이면 청와대가 나서고, 법원장과 검사장이 다그쳐 더 이상의 확대를 막음으로써 우호적 관계의 큰 틀이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다. 그런 권위주의 시대에서 '영장기각률 0%'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민주화는 법ㆍ검 연대 구조를 일거에 흔들어놓았다. 권력의 통제가 사라지고 두 기관의 변화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커지면서 암묵의 연대가 이뤄질 공간은 점점 좁아졌다. 사적 관계가 공적 업무의 혜택으로 이어지는 관행에 대한 안팎의 견제도 세졌다. 내부로부터 각자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 싹트면서 두 기관 사이에 갈등이 농축될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최근 터진 법원과 검찰의 영장 마찰도 크게 보면 탈권위시대의 필연적 진통으로 여길 수 있다. 사회적 정의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해진 검사들과 인권 옹호에 보다 애착을 갖는 판사들의 충돌이 영장 재청구와 재기각의 반복으로 이어졌다면 양쪽의 갈등을 꼭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다툼의 양상이 너무 사납다. 법리 논쟁은 숨어버리고 "토씨하나 안 고치고 영장을 재청구"하는 '오기 검사'와 "할 테면 해봐라"식으로 나오는 '몽니 판사'가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다. 저자 거리의 쌍말만도 못하는 언어들이 예사롭게 오가고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한 막후설전이 이어진다.

상한 감정을 다독이기 위해 양쪽 간부들이 비밀회동까지 했다지만 권위시대에 통했던 이런 식의 해법이 지금 통할 리 없다. 급기야 사법부의 수장이 실체 없는 음모론에 휘말리고, 그 대법원장은 독재정권의 음습함을 떠올리게 하는 '음모 세력'의 존재를 운운해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건 아니다.

법원과 검찰은 우리 사법제도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다. 세상의 불의와 싸우고 국민들의 다툼을 심판해야 할 검사와 판사가 권위와 절제심을 저버리고 서로 물어 뜯어 생채기를 남기는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행동한다면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만다.

두 기관은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난 만큼 국민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검사와 판사를 향해 "그대들은 지금 밥그릇을 위해 일하는가, 국가를 위해 일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검찰과 법원은 이제라도 자신들의 뒤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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