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미국의 다소 변화된 태도가 앞으로 재개될 북핵 6자회담의 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 중국 등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과의 잇단 개별 회담에서 핵 포기의 대가로 북한에 제공할 유인책을 언급함으로써 ‘채찍과 당근’사이에서 균형감을 되찾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이후 APEC 정상회의 직전까지만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제재 결의의 철저한 이행 등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데에만 관심을 보여왔다.
미국이 유인책을 거론했다고는 하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획기적 토대가 마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측이 대북 유인책의 예로 든 것은 ‘한국전 종전 선언’ ‘안보 및 경제협력’ ‘문화, 교육 및 기타 관계개선’등이다. 이 같은 내용들은 동일한 표현은 아닐지라도 지난해 6자회담에서 합의된 9ㆍ19 공동성명에 모두 포함된 것들이다. 공동성명에 따른 미측의 이행조치를 재 다짐한 것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으나 그것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행조치들의 시기나 순서 등에 구체성이 부여돼야 하는데 미측의 준비가 거기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미측이 예시한 대북 유인책은 북한 핵문제 해결이 상당히 진전된 뒤에나 상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단기적 파괴력이 크지 않다. 1년여만에 재개되는 6자회담에서 첫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각론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특히 미측이 북한에 대해 핵포기 의지의 증명용으로 요구할 것으로 알려진 구체적 조치들, 즉 영변 실험용 원자로 및 재처리시설 동결 및 폐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재개 등에 상응하는 미측의 조치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나오지 않았다. 6자회담의 새 출발을 위해서는 ‘한국전 종전 선언’등의 구두 약속보다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금융제재에 대한 전향적 조치, 9ㆍ19 공동성명에도 포함돼 있는 대북 에너지 지원 방안 모색 등이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때문에 향후 6자회담이 재개되기까지 몇주 동안은 9ㆍ19 공동성명 이행조치들의 시기와 순서를 정하고 합의 가능한 조합을 만들어내는데 관련국의 노력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이번 주중 중국방문 일정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대북 유인책 제시와 관련된 미측의 진정성 여부는 각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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