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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서 발굴 한국戰 전사자 유해/ 반세기 만에 가족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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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서 발굴 한국戰 전사자 유해/ 반세기 만에 가족 품으로

입력
2006.11.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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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산화한 국군장병의 유해가 50여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육군 유해발굴단은 최근 강원 홍천군에서 한자 이름이 새겨진 수통과 함께 고 장복동 일병의 유해를 발굴하고 병적(兵籍) 확인과 DNA 검사를 거쳐 외아들(58)을 찾아냈다. 낡은 수통 하나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 형의 유해를 확인하는 단서가 됐던 만년필 역할을 해 낸 셈이다.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의 파죽지세에 밀려 순식간에 낙동강 전선까지 물러난 국군은 병력보충을 위해 대대적인 징집활동에 나섰다. 거문도에서 동북쪽으로 40㎞ 가량 떨어진 전남 여수시의 손죽도라는 작은 섬까지 징집의 손길이 미쳤고 300여호의 작은 마을에서 50여명의 장정이 전선으로 끌려갔다. 두 살배기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던 장(당시 26)씨도 징집을 피할 수 없었다.

장씨는 제주의 임시훈련소에서 1개월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전남ㆍ북 일대의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됐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이 벌어지자 국군은 51년 초부터 중부전선에 병력을 집중시켰으며 장씨가 배속된 9사단 30연대도 강원 홍천군 부근으로 전진 배치됐다. 인제군과 홍천군 일대에서는 이른바 ‘중공군 정월 대공세’에 맞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장씨도 그 곳에서 마지막 목을 축였을 수통만 남긴 채 산화했다.

장씨의 유해는 수통과 함께 50여년이 훌쩍 흐른 9월 말 이 일대에서 전사자 유해 발굴을 하던 육군 유해발굴단의 눈에 띄었다. 발굴단은 수통에 새겨진 ‘張福東(장복동)’이라는 한자 이름을 추적한 끝에 유해의 주인공이 손죽도 출신으로 50년 9월10일 입대한 장씨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어 병적 확인으로 전남 여수시에 거주하는 외아들까지 찾아내 DNA검사를 통해 친자 확인까지 마쳤다.

육군은 2000년부터 한국전쟁에서 숨진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1,500여구를 발견하는 데 그쳤다. 이 가운데 신원을 확인한 경우는 52구, 유가족까지 확인한 경우는 22구에 불과하다.

아들은 유해발굴 소식을 듣고 “유해를 찾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며느리 김모(52)씨는 “시집 어른들로부터 시아버지가 전사했다는 말만 듣고 매년 음력11월 제사를 지내왔는데 유해를 찾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아버지가 전사하는 바람에 남편이 어렵게 자란 이야기는 말로 다 하기 어렵다고 김씨는 전했다. 육군 유해발굴단이 올해 하반기에 발굴한 20여 위의 전사자 유해는 21일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합동 봉안되고 장씨의 유해는 다음 달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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