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노인을 뵈면 서글플 때가 있다. 까마득 어른이었던 그 연배가 이젠 나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나를 축 처지게 할 때면 가깝게 지내는 선배들을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세월의 너울을 헤쳐나간 분들을. 그러면 좀 견딜 만하다. 가장 힘이 되는 분은 소설가 이제하 선생님이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노땅들 몇이 말이야"하셨을 때 나는 딴 생각을 하느라 실수를 했다. 추임새를 넣는답시고 "네, 선생님도요"한 것이다. 선생님 안색이 변하셨다.
"내가 무슨 노땅이냐? 난 영원한 청춘이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비굴하게 웃으며 "아, 네, 네, 그렇지요" 했다. 선생님을 가까이서 뵌 지 20년인데, 영원한 청춘족답게 처음 그대로 모습이시다. ("20년 전 이미 늙을 만큼 늙으신 거"라 천인공노할 말을 하는 혹자도 있지만.)
생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과 의욕, 호기심, 탐구심, 동해를 너끈히 거느리는 수영 실력, 지순한 마음 등등. 선생님의 생기는 청춘의 귀감이다. 집들이 선물로 선생님께서 포도주와 "아까워 못"쓰셨다는 멋진 양초 한 쌍을 주셨다. 나도 아까워서 못 쓸 것 같다.
시인 황인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