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스노 미 백악관 대변인은 18일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구체적 목록에는 (정전상태에 있는) 한국전의 공식 종료선언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있은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와 핵 야망을 포기하면 안보협력과 이에 상응하는 유인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6자회담 9ㆍ19 공동성명 4항(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과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전쟁종료 선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큰 틀에서 파격적 제안은 아니지만, 북핵 폐기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적극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1시간 동안 진행된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의 방점은 단연 ‘북핵 폐기 시 상응조치’에 찍혔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경제지원과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주겠다는 것은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부시 대통령이 적극성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이후 언론브리핑에서 “북한이 평화적인 길을 택한다면 안보를 보장하는 한편 경제적 지원과 다른 혜택도 제공할 준비가 돼있다”는 이틀 전 싱가포르 국립대 연설내용도 상기시켰다. “당근을 준비 중”이라는 말도 답변 형식이 아니라 자진해서 했다.
이 같은 기류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끈질긴 설득의 결과”라고 강조했지만, 중간선거에 참패로 외교노선 변경 압력에 직면해 있는 미 행정부의 처지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런 기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동석해 이어진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재확인됐다. 세 정상은 6자회담이 열매를 맺으려면 대북 압력과 제재만으론 안되고 핵 폐기에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미국의 ‘한국전쟁 종식 선언’카드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북한의 요구는 ‘선 평화체제, 후 핵 포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다른 선택 지도 많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부시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외교적 수사로 평가 절하하는 시선이 엄존하는 것도 그래서다.
● 종전 선언은
종전 선언이란 1950년부터 3년간 계속되다 현재 휴전 상태인 한국전쟁이 완전히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평화체제로 이행하자는 뜻이다. 평화체제 이행을 위해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평화협정에는 정전협정 당사국인 북한, 미국, 중국 외에 유엔군 일원인 한국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의 체제 보장 및 북미 관계 정상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유엔군사령부를 대체하는 평화유지군 등이 만들어진다.
하노이=이동국 기자 eas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