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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료 기준' 지키는 학원이 없다/ 단속 피하려 수강료·시간표 허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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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료 기준' 지키는 학원이 없다/ 단속 피하려 수강료·시간표 허위 게재

입력
2006.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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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연구기관들이 추정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사교육비 규모는 연간 20조원 가량이다. 하지만 정부의 수강료 기준을 지키는 학원이 거의 없는데다 고액 불법과외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사교육비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는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1997년부터 학원비 상한액을 설정, 수시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집계하는 사교육비 규모는 오히려 갈수록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당 평균 연간 사교육비는 147만원으로 전년(138만원)보다 6.5% 늘었다. 여기에다 전국 가구수를 곱해 산출한 전체 사교육비는 2003년 16조3,000억원에서 2004년엔 17조9,00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19조2,400억원으로 증가했다. 정부의 단속이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현실성 없는 가이드라인과 솜방망이 처벌이 주원인으로 지적된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강료 속이기

서울 청담동에 사는 주부 A씨는 초등학생 딸이 다니는 보습학원의 수학 학원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월 수강료는 15만원(주 1회 1시간30분 기준). 그런데 이 학원 원장은 “교육청에서 불시 단속을 나올 경우에 대비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신용카드를 수학 영어 등 두 과목을 수강한 것으로 계산해 끊어준다. 강남교육청이 정한 수강료 기준은 월 4만2,880원으로 실제 수강료의 3분의 1 수준이다.

서울 양천구 B보습학원은 교육청 단속에 대비, 정부의 수강료 기준에 맞춘 가짜 시간표를 별도로 만들어놓고 있다. 이 학원 C원장은 “교육청에서도 학원비 가이드라인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육청 제출용 가짜 시간표’를 따로 만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원업계는 교육당국이 정한 수강료 기준액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이를 지키면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 대치동 D보습학원 원장은 “임대료와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데 수강료 기준은 몇 년 째 거의 변동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교육청의 수강료 단속을 피하기 위해 수강료 허위 게시, 현금출납부 미비치, 무등록 교습과정 운영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셔틀버스 이용료, 부ㆍ교재비 등을 수강료에 얹어 편법 인상을 꾀하는 것도 흔한 수법이다.

실제 입시학원 종합반 수강료(2006년 8월 기준)는 2000년과 비교해 44.4%나 올랐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가 20% 오른 것에 비하면 2배가 넘는 인상률이다. 학원업계는 청소년 인구의 감소와 소규모 반편성 등 학부모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수강료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2006년 청소년 통계’를 보면 7월1일 현재 학령인구(6~21세)는 1,040만명으로 1980년에 비해 27.7%(399만6,000명)나 줄었다.

형식적인 단속과 솜방망이 처벌

물론 학부모와 정부 입장은 다르다. 수강료 인상이 학습의 질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과다한 수강료를 방치할 경우 사교육비 지출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고액 수강료를 받다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단속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관할 교육청은 학원비 초과징수액에 대해 전액 환불토록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적발 학원들은 시늉만 하다가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목동에 사는 주부 E씨는 지난 9월 초 자녀들이 다니는 수학학원 원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교육청의 학원비 일제 단속에 걸려 초과 징수분 25만원을 계좌로 환불해줄 테니, 다시 현금으로 되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중학생인 딸의 수강료는 30만원(주 2회), 초등학생 아들은 15만원(주 2회)을 냈는데, 교육청 기준은 10만원(월 21시간 수업)이 한도였다. 행정처분도 경고, 교습정지 등으로 너무 가벼워 단속과 처벌의 악순환만 부르고 있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단속인원 6명으로 5,000여개에 달하는 학원, 교습소 등에 대한 지도단속이 어렵고 정기점검이 보통 3년 주기로 이뤄져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학부모와 시민단체는 지역 및 과목별 특성을 감안해 수강료 기준을 현실화하되,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학원에 대해선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학원 수강료는 지역교육청, 학원관계자, 학부모,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학원수강료 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으나, 2~3년에 한번 개최하는 게 고작이어서 현실적인 기준 마련이 어려운 실정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최소 1년에 2회 이상 사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적정한 수강료 기준을 마련하고, 교육청과 소비자단체가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해 준수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이태희·김용식·안형영기자 news@hk.co.kr

사회부=박원기기자

■ 보습학원 원장의 고백, "정부 수강료 기준 지키면 학원 다 망한다"

서울 양천구에서 10년째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박모(43)씨는 “교육당국에서 정해준 수강료 기준을 지킬 경우 전국의 모든 학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씨 학원은 수강생이 약 250명, 월 매출은 6,000만원 가량이다. 학생 1인 당 월 22만원의 매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1대 1 개인교습도 한다. 수학의 경우 1년 과정을 2개월 동안 정리해주고 150만원을 받는다. 물론 노출되지 않는 수입이다. 대개 총 매출의 5% 정도가 1대 1 개인교습에서 나온다.

월 지출은 강사 13명의 인건비 3,500만원과 월 임대료 700만원, 운영비(복사비ㆍ전기세 등) 400~600만원 등을 합쳐 월 4,600만~4,800만원 선이다. 박씨가 매달 가져가는 순수익은 1,200만~1,400만원. 이 학원은 중학생 대상으로 주 2회 전 과목을 가르치고 월 30만원을 받는다. 영어ㆍ수학 단과반 수강료는 월 15만원(주 2회 강의 기준)이다. 관할 교육청이 정한 수강료 상한액은 단과반이 5만원, 종합반은 18만원 선. 이 기준을 그대로 지키면 월 매출은 3,000만원 선으로 뚝 떨어져 월 1,500만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한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수강료를 속이고 매출을 줄이면 된다. 학업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씨의 보습학원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고용 강사는 13명이지만, 관할 교육청에는 7명으로 줄여서 신고했다. 또 이 중 5명은 주당 수업시간이 9시간 미만으로 월 인건비가 80만원에 미달하는 일용직 강사인 것처럼 허위 보고했다. 소득세가 면제되는 것은 물론, 이들이 올린 매출도 과세 금액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단속에 대비해 수강료와 시간표를 허위 게재하는 것은 기본이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학부모에겐 1과목을 2과목 또는 3과목 수강한 것처럼, 카드전표를 2~3개로 나눠서 끊어준다. 강사 명의 통장으로 수강료를 입금 받는 것도 흔한 수법이다. 학원이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 학원이나 원장 명의 통장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우리나라 전체 사교육비 규모가 20조원 정도라는 정부 발표는 웃기는 얘기”라며 “실제 사교육비 규모는 이보다 두세 배 가량 클 것”이라고 단언했다.

교육청에서 이런 행태를 모를 리 없다. 그래도 ‘몸통’(대형학원)은 건드리지 않고 학부모 등의 제보가 들어오는 학원만 단속하는 시늉을 한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수강료 기준을 없앨 경우 ‘귀족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나 사교육 양극화가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쟁력 없는 학원들이 도태돼 학원시장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대졸 인력의 상당부분을 흡수하는 중소 학원들이 문을 닫을 경우 지금도 심각한 청년 실업률이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다.

박씨는 “수강료 가이드라인은 학원업계와 정부, 학부모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일종의 필요악”이라며 “상한액 기준이 없어지면 사교육 양극화로 중하위 소득계층의 자녀들이 자포자기에 빠지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이태희·김용식·안형영기자 news@hk.co.kr

사회부=박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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