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하는 대로 100% 바꾸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해 되는 것에만 전력투구하겠습니다.”
9월 취임한 오명 건국대 총장이 15일 총장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통신혁명의 선구자’ ‘정보기술(IT)의 대부’ ‘영원한 개혁가’ 등으로 잘 알려진 오 총장이니 만큼 욕심을 부릴 만도 한데 그는 ‘시선은 멀리, 그러나 발은 땅에’라는 명제에 충실하려 했다. 특히 그는 스스로를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CEO형 총장 위기론’에 대해 “총장으로서는 욕심을 부려 모든 것을 개혁하고 싶겠지만 이는 실패를 부르기 쉽다”고 강조했다.
_일부 대학에서 CEO형 총장들이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학문적 성과를 낸 ‘학자형 총장’이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나 총장이 명예만 추구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기업경영의 노하우를 대학 운영에 접목시키는 노력은 옳은 추세입니다. 나도 당연히 그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를 꺼리는 교수들에게 무조건 따라오라고만 하면 안 됩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해 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_CEO형 총장들이 추진하는 과제 가운데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하도록 하는 것과 교수평가제에 대한 반발이 큽니다.
“대학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영어강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무분별한 확대에는 반대합니다. 토종박사처럼 영어강의가 원천적으로 안 되는 교수들이 있어요. 그렇다고 그들의 학문적 능력이 뒤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도움이 될 만한 학과나 과목에서 우선적으로 도입할 계획입니다.
신규 교수 채용 때는 영어강의 능력을 평가하되 기존 교수들의 경우 영어강의가 가능한 교수들부터 시행할 것입니다. 교수평가제도 교수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추진하겠습니다. 저는 ‘베스트 티처(Best Teacher)' 제도를 강화해 일종의 교수평가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 중입니다. 매년 베스트 티처를 선정해 연말에 보너스를 주고 승진에도 반영할 것입니다. 못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잘 하는 사람에게 메리트를 주는 것이므로 큰 반발이 없을 것입니다.”
_취임 때부터 국제화를 강조하셨습니다.
“총장으로서 하나에만 집중할 수는 없겠지만 결국 국제화에 역점을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빠른 속도로 변하는 지구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서는 안 됩니다. 국내 대학들과 경쟁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우선 우리 학생들을 외국에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1, 2학년은 건대에서 3,4학년은 외국대학에서 공부해 두 개 대학의 학위를 동시에 따도록 할 계획입니다.
현재 건국대는 102개 대학과 자매관계를 맺고 실질적으로 국제화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최근에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발전속도가 가장 빠른 대학 등 3개과 MOU를 체결했습니다. 내년에는 유럽을 방문해 열매가 맺도록 하겠습니다. 또 우수한 외국 학생과 교수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 기혼자 전용 기숙사도 곧 건립할 계획입니다.”
_IT 수장 출신이기 때문에 이공계 침체 현상에 대해 더욱 안타깝게 생각하리라 봅니다. 이공계 지원 대책으로 구상하신 것이 있습니까.
“배경을 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 대학생 중 미국은 이공계 학생이 16%지만 우리나라는 44%나 돼요. 이공계가 중요하다고 대폭 늘리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기술지식이 없이는 사회 리더가 되기 힘든 세상이 됐어요. 실제로 30대 기업의 중역 절반이 이공계 출신입니다. 법대나 상대를 나와야 CEO가 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대신 이공계 학생들도 법률이나 경영지식을 배워야 해요. 건국대도 이공계 학생들이 리더십 법률 경영 등 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할 것입니다.”
_건국대는 축산학 수의학이 강하고 총장님은 IT가 특장 분야인데 두 가치를 융합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겠다는 느낌입니다.
“IT 생명과학기술(BT) 우주공학기술(ST) 나노기술(NT)의 접목 등 융합연구로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집단을 육성해 건국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 합니다. 의학 축산학 수의학 농학을 연계한 의생명과학연구, IT와 ST 분야 등의 차세대 혁신 기술 개발을 중점지원해 미래지향적 융합기술의 메카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건국대는 의생명과학연구원 차세대혁신기술연구원에 예산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_지난달 콜롬비아 정부의 초청을 받아 ‘앤디콤(ANDICOM) 2006’(라틴아메리카 국제IT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대통령도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이 IT 발전을 위해 초기에 어떻게 연구했는지 설명해 주는 자리였습니다. 정보화가 이뤄지면 기업의 오꼈봉?커지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고속도로를 많이 건설하면 대도시 집중 현상을 가져오지만 정보화는 모든 지역을 고루 발전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이런 점을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설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어요. 콜롬비아의 IT 마스터플랜을 짜는 데 자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정부가 건국대 등의 우수한 학자들로 자문단을 구성해 계획을 만들도록 요청했습니다. 콜롬비아가 성공하면 다른 나라도 한국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므로 우리 기업들이 혜택을 볼 것입니다.”
_대학수학능력시험(16일)을 시작으로 대학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방안을 말씀해 주십시오.
“국제화한 대학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겠습니다. 취업률이 높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비약적으로 취업률이 상승해 전국 5위를 차지했어요. 앞으로 취업률을 계속 향상시키기 위해 국내ㆍ외 유명 기업과 MOU를 체결, 취업을 조건으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인성과 교양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내년부터 100분짜리 강좌 100개도 개설할 예정입니다.”
_논술고사가 사실상 본고사가 됐다는 말이 많습니다. 논술 출제 방향은 정했습니까.
“내년부터 통합논술을 도입하고 자연계도 논술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먼저 출제는 논술연구개발위원회에서 교수와 교사들이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또 최근 학교에서 사교육 업계 관계자를 만나 6시간 동안 토론했어요. 여기서 논술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논술이 공교육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_정치만 빼놓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셨습니다. 정계에 진출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어요. 지역구까지 정해 주고 출마하라고 권유한 정당도 있습니다. 그 때도 거부했어요. 정치로 들어가면 내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아닙니까. 과학기술 분야에도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정리= 강철원기자 strong@hk.co.kr대담= 이은호 사회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 오명 건국대 총장의 리더십 "리더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돼야"
“리더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돼야 한다.”
오명 건국대 총장은 구성원 각자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리더의 역할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곧잘 비유하는 것도 이 같은 지론 때문이다.
오 총장은 부처를 이끌 때 제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직원들을 찍어 누르지 않고 오히려 독려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실수를 했다고 지휘자가 연주를 중단시켜서는 안되듯 부처의 수장도 개성이 뚜렷한 구성원들을 다독거려 큰 방향에 맞게 끌고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는 그가 과학기술부총리로 발탁됐던 것은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그의 이 같은 리더십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런 점에서 20년 넘게 부처 수장과 대학 총장 등을 역임한 것 역시 놀랄 일은 아니라고 지인들은 평가한다.
일부는 그의 리더십을 ‘똑게이론’에 비유하기도 한다. 리더는 똑똑하되 적당히 게을러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가 지나치게 부지런하면 조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김정수 고려대 경제행정학부 교수는 ‘오명의 리더십 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저서 <한국의 정보통신혁명> 에서 오 총장을 “기업도 아닌 거대한 관료조직을 강력한 리더십과 의지로 움직여 자신의 비전을 실천에 옮겼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강철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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