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잡지에 발표된 단편 6편과 소설집 1권, 장편소설 3권을 대상으로 한 한국일보문학상의 심사는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선택을 강요한 혹독한 시련의 자리였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각기 다채로운 문학적 개성을 보여주었고, 각 작품들이 고루 일정한 수준의 문학적 기량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심사 대상작들 가운데 단 1편만을 골라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지난한 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몇 차례의 논의를 거쳐 우선 단편과 단편집, 장편소설 등이 망라되어 있는 대상작들 가운데 장편소설들을 우선적인 심사의 대상으로 하되, 합의가 어려울 경우에는 다른 작품들도 함께 토론의 대상으로 삼자는 결론에 비교적 쉽게 도달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을 헤집는 치열한 난상토론의 연속이었다. 난상토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던 작품들은, 기존의 한국문학과는 차별화한 문학적 공간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은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특이한 소재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본질에 대한 치밀하고도 냉철한 해부학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혹은 재기발랄하고 개성적인 어법을 지닌 독특한 상상력으로 한국문학에 젊은 활기를 불어넣는 독자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수상작으로 선정될 나름의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 대한 토론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우리는 예심에서 올라온 모든 작품들을 대상으로 처음부터 다시 심사를 시작해야 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 오리무중을 헤매던 심사의 곤혹스러움은 예정된 심사시간을 훌쩍 넘기며까지 계속되었다. 그 결과 우리의 심사는 강영숙의 <리나> 에, 힘겨웠지만 마침내는 흔쾌히 동의하며 마무리됐다. 리나>
강영숙의 <리나> 는 우선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했던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것은 비단 문학적 소재나 공간의 확장뿐만 아니라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서사적 질감의 확대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심사의 자리에서 주인공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모호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있기는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모호함이란, 이 작품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더불어 작품의 서사적 활력을 떠받치는 작가의 독특한 전략일 수 있다. 때로 그 모호함이 과잉의 수사학을 수반함으로써 다소간 방만한 형태로 풀려버린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품이 기존의 한국문학과 차별화한 새롭고도 의미있는 문학적 상상력의 한 지평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리나>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선정되지 못한 다른 작가들에게는 진심으로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10편 가운데 단 1편이란, 심사라는 형식이 강요한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한다.
심사위원 박혜경 신경숙 최수철 황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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