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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경제학 거두' 美 밀턴 프리드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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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경제학 거두' 美 밀턴 프리드먼 별세

입력
2006.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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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유주의 경제학의 정신적 지주이자,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사진)이 16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20세기 경제학계에서 가장 위대한 자유주의자로 평가되는 프리드먼에겐 반(反) 케인스학파인 시카고 학파의 거두, 통화주의자의 대부, 작은 정부론의 기수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1912년 뉴욕시에서 가난한 유태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프리드먼은 20세에 러처스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뒤 1933년에 시카고대에서 석사, 1946년 콜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48년부터 시카고대에서 교수생활하며 기라성 같은 시카고학파를 일궜다.

프리드먼의 자유통화주의 경제학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경제학계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논쟁의 달인인 프리드먼은 당시 주류였던 케인즈학파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1970년대 초부터 점차 많은 추종자를 얻기 시작했고 서구 경제학계의 주류가 될 만큼 큰 영향력을 얻었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수제자인 로버트 루카스(199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게 교수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1976년 시카고대를 떠났다. 이후 스탠포드대의 후버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렀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경제정책 자문이사회의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경제 사상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등 80년대를 풍미한 영미 지도자의 통치철학을 형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프리드먼은 정부 규제에 맞서 기업의 자유를 설파했으며 통화 공급을 통한 점진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통화정책을 주장했다.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중시하면서도 프리드만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함부로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간섭은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통화주의 학파는 루카스를 필두로 하는 ‘합리적 기대학파’로 계승됐다.

프리드먼은 경제학자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1938년 그와 결혼한 아내 로즈 역시 프리드먼과 함께 <자본주의와 자유> 를 공동 저술한 경제학자다. 아들 데이빗 프리드먼도 물리와 화학을 공부했지만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식에서 “지금 스웨덴인 몇 명이 내린 평가보다 50년 후 동료 경제학자들이 내릴 평가가 더 무섭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 수상소감에 걸맞게 노벨상 수상 후 30년간 ‘20세기 경제학의 최고봉 중 하나’라는 거창한 평가를 받아온 프리드먼의 사상은 점점 거세지는 신자유주의 대 반 신자유주의 이념대립의 최전선에서 향후 20년의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게 됐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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