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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등단 50년만에 첫 詩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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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등단 50년만에 첫 詩 발표

입력
2006.11.1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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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 물 속 바위에 남겨둔 제일 좋은 전복”(서정주의 <시론> )이라던 이어령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처음으로 그 전복을 땄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 그가 “반세기에 걸친 내 글쓰기의 대단원은 시가 될 것”이라고 독자와 한 약속을 지키듯 문예지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본보 10월25일자 27면 한국인터뷰)

계간 시 전문지 <시인세계> 가 2006년 겨울호 특집으로 마련한 <비평가의 시, 시인의 비평> 에 실린 이 전 교수의 자작시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와 <도끼 한 자루> . 시와 비평의 행복한 소통을 위해 마련된 이번 특집에는 이 전 교수 외에 문학평론가 유종호, 김화영, 방민호, 김춘식, 김용희씨가 비평 대신 자작시를, 시인 이가림, 이하석, 장석원, 변의수, 김민정씨가 시 대신 비평을 실었다.

장차 이어령 시집의 <서시> 가 돼도 좋을 듯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는 시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이 전 교수의 시를 향한 순정과 염결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세계를 창조한 신을 우러르며 또 다른 세계의 창조자인 시인의 직분을 염원하는 서정적 자아는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었다는 신의 시적 위업을 영탄하며 무릎을 꿇는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 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포에지를 향한 간절한 기도로 끝을 맺는 이 시에서 50년을 참아온, 혹은 아껴온 이 전 교수의 뜨거운 시적 열망과 앞으로의 다짐을 읽는 건 ‘신진 시인 이어령’을 상상하는 즐거운 기대로 이어진다.

<시인세계> 발행인이자 시인인 김종해씨는 “이번 특집에 실린 비평가들의 시는 구태여 시인과 비평가의 장르 경계를 지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현역 시인 못지않은 기량과 시적 성취도를 보여준다”며 “특히 이어령의 시에는 경륜이 녹아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시 발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업에 착수한 이 전 교수는 올해 30권으로 완간된 이어령 전집 <이어령 라이브러리> 에 이어 내년에는 첫 창작 시집을 묶어낼 계획이다.

<도끼 한 자루> 이어령

보아라. 파란 정맥만 남은 아버지의 두 손에는

도끼가 없다.

지금 분노의 눈을 뜨고 댓문을 지키고 섰지만

너희들을 지킬 도끼가 없다.

어둠 속에서 너희들을 끌어안는 팔뚝에 힘이 없다고

겁먹지 말라.

사냥감을 놓치고 몰래 돌아와 훌쩍거리는

아버지를 비웃지 말라.

다시 한 번 도끼를 잡는 날을 볼 것이다.

2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호모사피엔스가 태어날 때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최초의 돌도끼.

멧돼지를 잡던 그 도끼날로 이제 너희들을 가로막는

이념의 칡넝쿨을 찍어 새 길을 열 것이다.

컸다고 아버지의 손을 놓지 말거라

옛날 나들이 길에서처럼 아버지의 손을 꼭 잡거라

그래야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차린 저녁상 앞에 앉을 수 있다.

등불을 켜놓고 보자

너희 얼굴 너희 어머니 그 옆 빈자리에

아버지가 앉는다.

수염 기르고 돌아온 너희 아버지의

도끼 한 자루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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