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로 비틀대던 국회가 정상화했다. 여야의 합의는 더 이상 이 문제에 걸려 산적한 현안을 미룰 수 없다는 실용적 이유가 거론되지만 양쪽 다 힘이 소진한 데 따른 휴전이다.
열린우리당의 '전효숙 사수' 열기가 많이 식은 듯한 기류가 감지된다. 정상화 합의를 전후해 여당 내의 기류는 처음 다짐했던 '사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국회 본회의장 점거 등 한나라당의 퇴행적 행태에 대한 여론의 반대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 직접적 요인이다.
애초에 전 내정자를 임기 6년의 온전한 헌재소장에 임명하고 싶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일념에서 비롯한 무리수가 낳은 위헌ㆍ위법 논란이 식지 않았다.
민간인 신분의 전 내정자에 대한 헌재소장 임명동의 요청이 헌법의 '재판관 중에서'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자 헌법재판관 임명을 위한 인사청문 절차를 따로 요청했다. 국회 청문회 시한을 넘겨 언제든 대통령이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만큼 절차상의 흠을 메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재판관을 사퇴시켜 재임명하는 행위가 단순한 꼼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차기 대통령의 전 내정자 후임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근본적 흠이 남았다. 이런 거리낌이 있고, 노 대통령조차 전 내정자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여당이 나서서 총대를 멜 까닭이 없다.
● 여당의 '사수' 열기 떨어져
물론 국회도 논란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헌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은 모두 국회동의를 거치도록 하면서도 헌법재판소는 소장만 국회동의를 얻도록 했다.
이 단순한 혼란을 헌법재판관의 법적 지위를 대법관보다 낮추려는 뜻으로 보지만 않는다면, 국회는 이를 보완할 수 있었다. 국회법은 대상자의 법적 지위를 기준으로 인사청문회를 인사청문특별위원회와 소관 상임위원회에 나누어 맡겼다.
헌법재판관 청문회를 대법관처럼 인사청문특위에 맡겼으면 많은 논란을 피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국회도 국회법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형식론만 고집하고 있기 어렵다.
더욱이 여야의 서로 다른 시각이 충분히 국민에게 알려진 만큼 이제는 국민의 변화 요구에 맞춰 찬반토론과 표결을 해도 특별히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니다.
정치적 타협은 흔히 원론적 엄밀성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의안 상정을 물리적으로 막는 구태에 머물렀다. 국민은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헌법재판소의 기능 부전에 무감각해서가 아니다. 뻔한 이치에서 애써 눈을 돌리고, 문제를 꼬아대는 양쪽의 행태가 못마땅해서다.
소장이 없다고 헌재가 굴러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9월15일 출범한 4기 헌재는 현재 주선회 재판관이 소장을 대행하며 공백을 메우고 있다.
다만 원래 9명이어야 할 재판관이 8명에 그쳐 6명 이상의 의견합치가 필요한 위헌 결정 등에 어려움이 있다. 우선 헌법재판관 1인은 임명해놓고 보자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가령 전 내정자를 우선 재판관으로 임명하고, 주선회 대행을 소장으로 임명한 후 내년에 임기가 종료될 때 노 대통령 마음에 드는 법조인을 새로 헌재에 넣으며 소장으로 임명하는 등의 대안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런 궁여지책도 꼼수에 의한 임기 연장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부닥치면 거품이 된다.
● 결단의 초읽기가 시작됐다
역시 해결책은 전효숙 내정자의 사퇴뿐이다.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자진 사퇴가 어렵다면 노 대통령이 임명동의 요구를 철회해도 된다. 멀쩡히 3년을 더 일할 사람을 그만두게 하는 셈이 되겠지만 단추를 잘못 끼운 책임을 달리 질 사람이 없다. 전 내정자도 꼼수를 묵인했거나 법적 논란을 간과한 책임이 있다.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가 결과적으로 전 내정자에게 손해를 끼친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공적 관심사가 아니다. 결단의 초읽기는 이미 시작됐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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