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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장정일의 공부' 세상의 무지와 맞서고자…우리 시대 이단아의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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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장정일의 공부' 세상의 무지와 맞서고자…우리 시대 이단아의 독서일기

입력
2006.11.1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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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 발행ㆍ371쪽ㆍ1만2,000원

신드롬까지 일으키며 우리 문단에 한바탕 바람을 몰고 왔던 작가 장정일(44). 거침없는 글과 발언 때문인지, 그에게는 열렬 지지자가 있었고, 그에 못지않은 안티세력이 있었다. 그런 그가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의외다. 하나 그는 중용의 미덕이 실제로는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다시 말한다. <장정일의 공부> 는 그 무지를 깨고자 하는, ‘알고 싶어서’ 한 공부다.

이 책 <장정일의 공부> 는 23개의 주제를 다룬다. 주제에 맞는 책을 읽은 뒤, 그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상을 붙이고 사유를 곁들였다. 그런데 그 주제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의 의식과 참신성과 창의력을 짓누르는 그런 문제들이다.

가령, 안인희의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 등을 읽으며 그가 생각한 것은 독재자는 전통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나치 지배를 위해 게르만 신화를 이용했고 박정희는 민족영웅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기리는 데 열을 올렸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1차 세계대전의 참여를 놓고 갈라 서고 결국 나치의 암흑시대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부분에 이르러, 장정일은 우리 정당의 계통발생 혹은 자기복제를 떠올린다.

민정당을 열면 신한국당이, 신한국당을 열면 한나라당이 나오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열면 민주당이, 민주당을 열면 열린우리당이 나오는 것인데 장정일은 이에 대해 손잡이를 움켜쥐고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새로운 미래와 희망이 열리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그것은 이들 정당이 이념적 차이 보다는 지역적 기반과 지역주의 성향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정일은 다시 바이마르시대에 민주주의 옹호자들이 나치에 투표한 까닭을 레드 콤플렉스에서 찾고서는, 자신도 역시 레드 콤플렉스가 내면화돼 있으며 그것이 딱히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질서와 안정에 대한 중산층의 끈질긴 집착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중국 역사학자 주겸지(朱謙之)의 저서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 는 동양이 유럽의 근대를 모방했다는 ‘상식’을 깨는 책이라고 장정일은 말한다. 주겸지는 13~16세기 유럽의 문예부흥은 중국 문화의 물질적 기초가 아니었으면 성립할 수 없었다고 본다. 몽골의 유럽 정복은 비록 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나침반, 화약, 주판, 인쇄술 등 과학 기술을 전파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후 유럽 특히 이탈리아 선교사, 상인 등의 중국 방문이 줄을 이을 정도로 유럽에 동양 열풍이 불었다.

주겸지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예수회 선교사는 공자의 경전을 수용했는데 이것이 훗날 유럽 신학계와 지식계를 달군 전례논쟁으로 번졌다. 어쨌든 논쟁이 끝날 무렵, 유럽은 종교시대를 마감하고 철학시대의 문을 열었다.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성격이 강한 중국의 철학이 데카르트, 파스칼, 루소 등 계몽철학자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주겸지는 아울러 명말 청초에는 중국이 서양 예수회가 종교의 방편으로 가져온 과학 문화를 적극 수용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그래서 장정일은 이제 이렇게 적는다.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교호한다.”

이주영의 <미국의 좌파와 우파> , 손영호의 <마이너리티의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 등은 장정일에게 미국 극우파에 대한 명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책들은 헌법근본주의, 기독교근본주의로 뭉친 미국 극우파의 행태를 지적하는데 장정일은 특히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파 사건의 범인 티모시 맥베이에 대한 사형이 부시 정권 아래서 행해진 사실에 관심을 보인다. 장정일은 이를 미국의 보수 우파가 티모시 같은 극우파의 ‘귀싸대기를 갈긴 것’으로 표현하면서 우파는 극단적인 극우파를 경계할 때 살 수 있다고 넌즈시 말한다.

<장정일의 공부> 는 이밖에 송시열 북벌론의 허구와 군대의 억압성, 일본 대학생의 지적 능력 저하 등을 다룬다.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음악과 삶, 민족주의, 일본의 파시즘, 진보정치가 조봉암의 죽음, 이광수의 친일 변절 등에도 접근한다. 이들 문제에 대한 생각의 근거는 모두 책이다. 그런 점에서 <장정일의 공부> 는 왕성한 책 읽기와 거기에서 우러나온 생각의 정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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