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많이 보는 대형 국어사전은 인터넷을 ‘전 세계의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개념어 사전> (들녘 발행ㆍ452쪽ㆍ1만3,000원)은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시선을 빌어 인터넷을 설명한다. 개념어>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토지에서 해방돼 법적, 정치적 자유를 얻는 동시에 새로이 자본에 경제적으로 예속된다는 점에서 이중적이고 분열적이다. 인터넷은 그 같은 이중적, 분열적인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자체의 내용을 가지지 않은 매체-비유하자면 인터넷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도로일 뿐이다-이지만, 광범위한 정보를 매개하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므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는 분열증, 이중성과 닮은 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념어 사전> 은 각 개념에 대한 설명을, 그 개념의 탄생 배경 및 역사적 사회적 맥락 등과 연결해 파악한다. 개념어>
저자인 남경태(45)씨는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등 70여권을 번역한 1급 번역자이자 <종횡무진 한국사>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등 대여섯 권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눈에> 종횡무진> 세상을> 문학과>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의 개념은 단일한 의미보다 복합적인 뜻을 지니고, 하나의 개념도 인접 개념과 연관되고 중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개념을 이해할 때는 사전적 정의보다 그 개념에 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얻는 것이 올바른 이해의 방법입니다.”
그가 말하는 ‘개념에 대한 이미지’는 하나의 개념을 전체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너, 잘났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잘 났다’라는 뜻이지만, 앞 뒤 흐름을 헤아린다면 ‘너, 잘난 척 하지 마라’라는, 정반대의 뜻이 됩니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각종 개념은 이렇게 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은 권력에 대한 설명에서도,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주장을 차용한다.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을 몽매한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식이 이제는 권력과 하나가 돼 도리어 억압과 질곡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사례를 말해주는 퀴즈를 덧붙인다. 의사가 라틴어로 처방전을 쓰고 약사가 약을 잘게 갈아주는 이유는? 답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가벼운 감기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환자가 받은 약이 실은 아스피린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란다.
책에는 가상현실, 담론, 디아스포라, 마녀사냥, 모더니즘, 신자유주의, 엄숙주의, 유물론, 자본주의, 제3의 물결, 창조론, 카오스, 파시즘, 패러디, 하이브리드 등 150여 개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대부분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했거나 익숙한 것들로 저자가 책을 쓰면서 메모해놓은 철학 역사 심리학 예술 등 인문학 전반의 개념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용어 사전이 아니라 인문학의 지적 탐색이다. 각 개념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그 자체로 책 한 권씩을 압축한 것 같아 인문학적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은근한 재미를 준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인문학의 개념들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그는 무엇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눈으로만 읽지 말고 그 의미를 되씹어 보자고 한다. “책에서 뭔가를 뽑아내려고만 하지 말고, 책을 나의 사고 작용을 촉발하는 수단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한 가지 개념의 사전적 정의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이 말하는, 혹은 그것이 형성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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