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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심윤경 세번째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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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심윤경 세번째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입력
2006.11.1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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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위주로 작동하는 한국 문단에서 이례적으로 굵직굵직한 장편만 내놓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젊은 작가 심윤경(34)씨가 세 번째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문학동네ㆍ9,500원)를 펴냈다. 책의 마지막 장에 다음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심어놓았던 <달의 제단> 이후 2년 만이다.

우선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살펴보자. 외견상 문학과 무관해 보이는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했고, 첫 장편 <나의 아름다운 정원> 으로 2002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태 뒤 발표한 <달의 제단> 으로 평단과 독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으며 무영문학상을 수상했으나, 기실 이런 이력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일본인이 썼는지 한국인이 썼는지 분간되지 않는 몇몇 쿨한 소설들에서 일말의 모욕감”을 느끼고, “내가 살아가는 이 덥고 끈적끈적한 세상을 한없이 쿨하게 냉소하는 너희는 누구야”( <달의 제단> ‘작가의 말’ 중)라고 질타하는, 보기 드문 ‘신세대 고전파 작가’라는 점이다.

<이현의 연애>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흔해빠진 다른 사랑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순수, 운명, 복종, 이런 복고적 단어들이 섬광같이 정수리를 내리치는”(15쪽) 운명적 사랑을 그린 고전적 ‘연애비극’이다. 재정경제부에 근무하는 마흔 두 살의 잘생긴 부이사관 이현은 지하 매점에 갔다가 “피부에서 살구즙의 향기를 풍기고, 빙하에서 방금 퍼올린 다갈색 구슬 같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이진을 만난다.

그러나 이진은 자신을 찾아오는 생령(生靈)들의 이야기를 노트 위에 받아 적는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영혼을 기록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20년간 정신병원과 빈집에 감금돼 살아왔고, 이현은 그런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이현의 네 번째 결혼이다.

소설은 이들의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고도 치밀한 문장으로 한 뜸 한 뜸 떠나간다. 사랑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 펼쳐지는 줄다리기,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언제나 패자가 되는 ‘사랑 권력’의 비애가 이즈음 용도폐기된 것으로 여겨지는 연애소설 고유의 매력을 되살린다. 작품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이진의 기록 4편은 심씨의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케 하고, 한 번 소설을 잡으면 끝을 보고 싶게 만드는 이 작가의 재능은 장편 작가로선 더없이 소중한 미덕이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 극적이어서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달의 제단> 에 대한 비판은 <이현의 연애> 에서 한 차례 더 유효기간을 갱신한다. 이현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게 된 경제부총리의 영혼이 이진을 찾아오면서 이들의 사랑은 비극적 최후를 맞지만, 그 비극의 효과는 TV 아침 드라마의 통속성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쿨한 것에 대한 반감이 반드시 과도한 낭만주의와 신비주의일 필요는 없건만.

<이현의 연애> 는 연애소설인 동시에 소설가의 운명을 그린 알레고리소설로도 읽힌다.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8쪽)라는 이진의 말은 그 자체로 소설가의 존재증명이기도 하다. 영혼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존재, 그것을 기록하는 동안 현실과 길항해야만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현이 이곳-현실을, 이진이 저곳-진실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현의 연애> 에서 못다 이룬 이곳-현실과 저곳-진실의 만남이 쿨한 포즈와 복고적 낭만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에서 화해롭게 이뤄지기를.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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