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위주로 작동하는 한국 문단에서 이례적으로 굵직굵직한 장편만 내놓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젊은 작가 심윤경(34)씨가 세 번째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 (문학동네ㆍ9,500원)를 펴냈다. 책의 마지막 장에 다음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심어놓았던 <달의 제단> 이후 2년 만이다. 달의> 이현의>
우선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살펴보자. 외견상 문학과 무관해 보이는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했고, 첫 장편 <나의 아름다운 정원> 으로 2002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나의>
이태 뒤 발표한 <달의 제단> 으로 평단과 독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으며 무영문학상을 수상했으나, 기실 이런 이력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일본인이 썼는지 한국인이 썼는지 분간되지 않는 몇몇 쿨한 소설들에서 일말의 모욕감”을 느끼고, “내가 살아가는 이 덥고 끈적끈적한 세상을 한없이 쿨하게 냉소하는 너희는 누구야”( <달의 제단> ‘작가의 말’ 중)라고 질타하는, 보기 드문 ‘신세대 고전파 작가’라는 점이다. 달의> 달의>
<이현의 연애>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흔해빠진 다른 사랑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순수, 운명, 복종, 이런 복고적 단어들이 섬광같이 정수리를 내리치는”(15쪽) 운명적 사랑을 그린 고전적 ‘연애비극’이다. 재정경제부에 근무하는 마흔 두 살의 잘생긴 부이사관 이현은 지하 매점에 갔다가 “피부에서 살구즙의 향기를 풍기고, 빙하에서 방금 퍼올린 다갈색 구슬 같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이진을 만난다. 이현의>
그러나 이진은 자신을 찾아오는 생령(生靈)들의 이야기를 노트 위에 받아 적는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영혼을 기록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20년간 정신병원과 빈집에 감금돼 살아왔고, 이현은 그런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이현의 네 번째 결혼이다.
소설은 이들의 결혼생활이 파국으로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고도 치밀한 문장으로 한 뜸 한 뜸 떠나간다. 사랑의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 펼쳐지는 줄다리기,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언제나 패자가 되는 ‘사랑 권력’의 비애가 이즈음 용도폐기된 것으로 여겨지는 연애소설 고유의 매력을 되살린다. 작품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이진의 기록 4편은 심씨의 이야기꾼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케 하고, 한 번 소설을 잡으면 끝을 보고 싶게 만드는 이 작가의 재능은 장편 작가로선 더없이 소중한 미덕이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 극적이어서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달의 제단> 에 대한 비판은 <이현의 연애> 에서 한 차례 더 유효기간을 갱신한다. 이현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게 된 경제부총리의 영혼이 이진을 찾아오면서 이들의 사랑은 비극적 최후를 맞지만, 그 비극의 효과는 TV 아침 드라마의 통속성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쿨한 것에 대한 반감이 반드시 과도한 낭만주의와 신비주의일 필요는 없건만. 이현의> 달의>
<이현의 연애> 는 연애소설인 동시에 소설가의 운명을 그린 알레고리소설로도 읽힌다.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8쪽)라는 이진의 말은 그 자체로 소설가의 존재증명이기도 하다. 영혼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존재, 그것을 기록하는 동안 현실과 길항해야만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현이 이곳-현실을, 이진이 저곳-진실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현의 연애> 에서 못다 이룬 이곳-현실과 저곳-진실의 만남이 쿨한 포즈와 복고적 낭만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에서 화해롭게 이뤄지기를. 이현의> 이현의>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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