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꿍꿍이가 뭘까.”
당초 10월부터 착수할 예정이던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2대 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때문에 지연되자 그 배경을 두고 금융권에서 추측이 무성하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나 소액 채권은행들까지도 “산은이 매각 논의의 판을 깨고 있다”며 “매각 작업을 미루는 속내를 알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은행이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현대건설에 부실책임이 있는 옛 사주가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먼저 가린 뒤 매각 작업을 진행하자는 것. 김종배 산은 부총재는 16일 “현대건설의 구(舊) 사주란 범 현대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구 사주 문제에 대해 명확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매각이 지연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매각 작업을 진행하면서 법률적인 검토를 해도 충분한데도 ‘국민적 합의’라는 애매한 기준까지 들먹인 것이다. 더구나 하이닉스가 9월 옛 현대그룹 경영진의 하이닉스 부실 책임을 이유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결과를 지켜보자는 단서까지 달았다. 대형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1년, 길게는 수년 이상 걸린다는 점에서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산은이 매각 주간사를 맡기 위한 지연작전”이라거나,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에 매각 진행을 맡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등의 추측이 나왔다.
무엇보다 산은이 정치적 이유로 매각 작업을 차기정부 이후로 미루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투표 전날 노무현 후보와 결별을 선언해 현 정부와 불편한 관계인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측이 인수전에 적극 참여할 경우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산은으로선 곤란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배제할 경우 차기정부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산은 고위 관계자도 “현대건설 매각을 잘못하면 나중에 청문회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며 일단의 심경을 내비쳤다. 다만, 현대건설의 소액 채권은행들이 산은의 지연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어 산은의 의도대로 지연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한편 범 현대가의 일원으로 현대건설의 ‘구 사주 범위’에 새롭게 포함된 현대중공업 측은 “현대건설 인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상황에서 인수 참여를 전제로 언급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현대상선 우선 상환주까지 발행한 현대그룹 측은 “현대건설이 부실화 될 당시 고 정몽헌 회장 등이 모든 자구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구 사주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그룹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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