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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내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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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내장의 힘

입력
2006.11.1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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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추위와 함께 본격적인 겨울 무드에 돌입했다. 집 앞에 파 한 단 사러 나가는 길에도 두터운 양말을 꼭 챙겨 신게 된다. 이럴 때 생각나는 음식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맛을 봤던 오징어 찜. 팔팔 뛰는 오도리에 끝물 전어를 날로 먹자니 주인장이 ‘뜨뜻한’ 맛도 좀 보라면서 서비스 해주셨던 메뉴다. 싱싱한 오징어 한 마리를 그야말로 살짝 쪄서 주신 게 전부였는데. 오징어 몸통을 칼로 살살 가르니 스륵 흘러나오던 내장! 소금 간만 한 오징어 내장은 열기에 녹아 스스로 뒤엉켜 담백한 오징어 살을 위한 최고의 소스로 둔갑해 있었다.

이 맛을 본 게 재작년 11월 이었다. 작년 11월에는? 완도에 있었다. 양식 전복을 한 접시 먹다가 내장이 남았는데, 끓고 있는 찌개 국물에 ‘샤부샤부’처럼 슬쩍 담갔다가 참기름에 찍어 먹어 보았다. 워낙 상태 좋은 전복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녹 빛을 띈 통통한 내장이 살짝 익혀져 씹히는 맛은 세계 3대 진미라는 푸아그라에 지지 않는 식감이었다. 한입 한입에 듬뿍했던 단백질과 바다 냄새! 겨울이 오니, 내장이 먹고 싶다.

♡ 기타 부위

고기 집에 가면 내장 일체를 뭉뚱그려 ‘기타 부위’라 써 놓은 메뉴를 보게 된다. 이 ‘기타 부위’로 말할 것 같으면 <동의보감> 이나 <본초 강목> 을 비롯한 수많은 의학서에서 위와 장을 보하는 스태미너 식으로 ‘강추(강력 추천)’되어 온 식 재료다. 나만해도 몸이 아프면 돼지의 ‘기타 부위’를 잔뜩 넣고 끓여 낸 뽀얀 순대국부터 찾게 되는데, 한 그릇의 내장을 먹고 나면 정말 감기 기운이 뚝 떨어진다. ‘남의 속’을 먹는 것이라 그런지, 내장을 잘 먹고 나면 정말 속이 든든하게 치유 되는 느낌이 든다.

왕십리 곱창 골목이나 북한산 근처의 숯불곱창집에 가면 질깃한 돼지 곱창은 맵게 양념해서, 소곱창은 참기름에 소금 간으로 먹게 되는데, 둘 다 별미다. 내 단골집은 너덧 평 남짓한 곳인데, 백열전구가 테이블마다 불을 밝히고, 호남형의 주인장과 아드님이 푸짐하게 볶은 곱창을 지글지글 ‘호일 째’로 갖다 주신다. 맛도 분위기도 ‘죽인다’.

집에서 내장을 요리 하려면, 밑 손질이 관건이다. 내장 특유의 잡 냄새 때문인데, 기름기나 검은 막 부분을 꼼꼼히 떼어 내야 조리 후 맛이 깔끔하다. 손질 한 내장은 물에 한번 끓여서 건져 낸 다음, 그 때부터 이렇게 저렇게 사용하면 된다. 물에 끓여낼 때 마늘이나 생강 등의 향신 채소를 써서 잡내를 한 번 더 죽일 수도 있다. 단골 정육점에 고기 들어오는 날짜를 알아 두면 신선한 내장을 구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고추 가루 듬뿍 넣고 양파, 생강, 마늘, 간장,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춰서 상에 내면 ‘밥상’이 순식간에 ‘술상’된다.

♡ 소간 볶음

튼튼한 나도 힘이 부치면 어지럼증이 날 때가 있다. ‘빈혈’은 그야말로 피가 가난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럴 때는 바로 철분이 많이 들어 있는 식재료를 챙겨 먹는다. 뽀빠이처럼 혈색이 좋아지는 시금치를 비롯, 굴이나 달걀과 같은 식재료들은 적혈구에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철분이 함유된 식품이다. 헤모글로빈은 체내에 들어 온 산소를 적절히 운반하고, 몸속에서 생겨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철 성분이 거의 없는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 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다보면 ‘허우대’는 멀쩡해도 비실거릴 수밖에 없다.

이 철분이 가장 많이 함유된 식품 중 하나가 바로 소고기. 그 가운데서도 ‘간’ 부위가 으뜸이라는데, 간을 먹으면 눈에 좋은 영양소까지 있어서 어지럽고 눈이 침침할 때 특효다. 소간은 우유에 담갔다가 헹궈내면 잡냄새가 많이 가시는데, 간이랑 우유는 음식 궁합도 잘 맞아서 일석이조다. 잡내를 빼고 잘 헹군 간을 먹기 좋게 썰어서 팬에 후딱 볶은 다음, 역시 후딱 볶아서 소금, 후추, 고춧가루, 참기름으로 간을 맞춘 부추와 함께 먹는다. 약이라 생각하고 상추나 깻잎에 싸서 밥이랑 먹어보자.

내장의 힘을 빌리는 민족은 우리뿐이 아니다. 프랑스의 거위 간은 물론, 브라질에서는 여러 종류의 콩과 콩팥을 뭉근히 졸여 먹는다. 라틴계 사람들도 허파나 기타 내장을 토마토소스와 고추로 적절히 양념해서 스튜처럼 먹기도 한다. 마오쩌둥이 즐겨 먹었던 음식 중에 ‘초두사’라는 요리가 있는데, 돼지의 위장을 잘게 썰어서 볶은 것이다. 이렇게 활용 범위가 방대하고 맛이 다양한, 어찌 보면 미식중의 미식인 내장 요리들. 순대, 선지국, 내장탕 등의 맛있는 메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수험생을 두어 녹초가 된 가정이나 피로를 달고 사는 직장인들, 후끈한 스태미너가 아쉬운 부부들! 이번 주말에는 내장 볶음 한 접시에 마침 출시된 2006년산 ‘보졸레 누보(햇와인)’를 한 잔 곁들여 봄이 어떨까.

음식칼럼집 ‘저자 박재은

소의 간과 부추를 살짝 볶은 소간볶음. 남의 속이어서일까. 내장요리는 맛은 물론 허약해진 몸을 보하는 데 제격이다. 본격적인 겨울을 시작하면서 내장요리로 후끈한 스테미너를 보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임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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