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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제논과 제노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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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제논과 제노포비아

입력
2006.11.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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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독일에 외국인 혐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유대인 학살의 전력이 있는 독일이라서 더구나 염려된다.

외국인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을 꺼리는 것을 이방인(異邦人)을 뜻하는 제노와 싫어한다는 뜻의 포비아를 합쳐 제노포비아(xenophobia)라고 한다. 다른 꽃에서 꽃가루를 받는 이화수분(異花受粉)을 xenogamy라 하고, 기름이 물과 섞이지 않는 것을 hydrophobic하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휴전선 근방에서 채취한 공기에서 제논(xenon)을 검출하여 북한의 핵실험을 확인한 일이 생각난다. 그런데 제논과 제노포비아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 제논으로 북한 핵실험 확인

핵폭발이건 핵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잘 조절된 핵반응이건 간에 핵분열이 일어나면 원자번호가 92인, 즉 원자핵에 양성자가 92개 들어있는 우라늄이나 94인 플루토늄이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

이 때 흔히 생기는 조각 중에는 56번의 바륨, 36번의 크립톤, 그리고 54번의 제논이 있다. 바륨은 고체인데 반해 크립톤과 제논은 기체이기 때문에 공기 중으로 퍼져나간다. 게다가 방사능을 띠는 크립톤과 제논은 미량만 있어도 검출이 가능하다.

그런데 핵폭발의 결과로 얻어진 기체가 공기 중에서 다른 물질과 반응을 해서 사라진다면 핵실험 여부를 판정하는 방편으로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크립톤과 제논은 반응성이 전혀 없는 비활성기체에 속한다. 다른 비활성기체로는 헬륨, 네온, 아르곤, 라돈이 있다.

공기의 약 1%를 차지하는 비활성기체 아르곤은 1894년에 영국의 물리학자 레일리에 의해 발견되었다. 보통 크기 거실의 공기에도 야구공 무게 정도의 아르곤이 들어 있어서 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 계속해서 폐를 들락날락하고 있지만 아르곤은 워낙 안정하고 반응성이 없다 보니 돌턴의 원자설이 발표되고 나서 거의 10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아르곤 원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레일리는 이 반응성이 없는 기체를 일(erg)을 안하고(a) 게으르다라는 뜻에서 아르곤(argon)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어서 레일리의 동료였던 화학자 램지에 의하여 공기에 미량으로 들어 있는 네온, 크립톤, 제논이 연이어 발견되었다. 이들 원소는 워낙 양이 적기 때문에 램지는 일단 공기를 대량으로 액화시켜 액체공기를 얻었다.

그리고는 끓는점의 차이에 따라 비활성기체들이 하나씩 기화되어 나오는 것을 수집하고 새로운 원소인 것을 확인했다. 네온 사인에 사용되는 네온(neon)은 이 원소의 스펙트럼을 본 램지의 어린 아들이 "아빠, 새 (new) 원소야" 하고 흥분하는 바람에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크립톤(krypton)은 숨어있는 원소라는 뜻이다. 다빈치코드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암호 해독을 크립톨로지(cryptology)라고 하는 것과 어원이 같다.

● 북한은 언제 외톨이를 면할까

제논은 다른 비활성기체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 원소다. 산소는 수소와 화합해서 물을 만들고, 금속인 나트륨과 유독한 기체인 염소가 만나면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이 된다.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DNA 이중나선도 수소, 탄소, 질소, 산소, 그리고 제5원소인 인의 화학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보면 세상을 살맛 나게 해주는 많은 화학 변화들은 다양한 원소들이 각자의 성격에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화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제논은 외톨박이 원소다. 제논의 검출을 통해 핵 보유가 확인된 북한은 언제까지 국제사회에서 외톨박이로 남아 있으려나.

1904년에 레일리는 노벨물리학상을, 램지는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같은 분야의 일로 같은 해에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이 수여된 유일한 케이스다. 물리학자와 화학자가 화합해서 외톨박이 귀족 기체들을 발견했다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김희준 서울대 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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