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국가대표팀은 ‘기적의 팀’으로 불린다. 대표팀이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전용 구장조차 하나 없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 지난 두 차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4개나 쓸어 담았다.
# 7인제 '파워보단 기술' 金 유력열악한 환경불구 선수들 비지땀투자 통해 인기종목으로 키워야
방콕 아시안게임과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거푸 7인제와 15인제에서 우승, 잠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가 싶었지만 이내 잊혀졌다. 4개의 금메달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열악해졌다. 전용 구장은커녕 한국 럭비의 상징적 존재였던 오류동 구장마저 폐쇄 위기에 놓여있다. 선수들은 여전히 절정의 기량을 보일 나이에 몸 담을 구단이 없어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며 아시안게임 3연패의 투혼을 불사르는 럭비 전사들을 지난 9일 제천 청풍리조트 훈련장에서 만났다.
금메달 전선은 쾌청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7인제 한 종목만 개최된다. 송노일 럭비대표팀 감독은 “파워가 중시되는 15인제와 달리 7인제는 선수들의 전술 이해력과 스피드, 임기응변력이 메달을 좌우한다. 우리에게 오히려 유리한 종목으로 우승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금메달을 자신했다.
대표팀은 전국체전이 끝난 지난달 28일 28명의 선수를 소집, 청풍리조트에서 18일부터 홍콩에서 열리는 2007 럭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15인제)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중 12명의 선수가 도하 아시안게임 7인제에 출전한다. 우승 경험이 있는 전종만(한국전력), 윤희수(포항강판), 김형기(포항강판) 등 베테랑에 연건우(고려대) 등 패기를 앞세운 ‘젊은 피’ 들이 가세, 안정된 전력을 갖췄다는 것이 송감독의 평이다. 송감독은 전통적인 라이벌인 일본보다 중국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며 중국과 결승에서 격돌할 것으로 예상했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아쉽다
럭비는 아시안게임에서 이른 바 ‘효자 종목’이다. 구기 종목 중 2개 대회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지나치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 훈련 여건을 보자. 청풍리조트를 찾았던 9일까지 이들은 소속팀의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대표팀에 선발된 지 10일이 지나도록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았다’는 자부심조차 느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열악한 한국 럭비의 현주소다.
팀 닥터는 고사하고 팀 매니저조차 언감생심이다. 정형석 코치와 서천오 코치가 주무의 임무를 병행하고 있다. 이동시 탑승할 버스부터 훈련 도중 마실 음료수까지 이들 코치가 일일이 챙겨야 한다. 숙소인 청풍리조트 레이크힐호텔의 호숫가에는 벤치 프레스 등으로 만든 작은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이 있다. 코칭스태프가 사비를 털어 마련한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장이 없어 낸 궁여지책이다. 팀 닥터가 없다 보니 선수들은 작은 부상 정도는 스스로 치료하는 능력까지 생겼다.
훈련장으로 쓸 수 있는 운동장은 많지만 ‘잔디보호’ 등을 이유로 훈련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대표팀이 사용했던 청풍 공설운동장의 경우 럭비 골대가 없는 것은 물론 규격도 럭비 경기장에 모자란다.
한중일 삼국지, 이대로는 승산 없다
투자 없이 결실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 현재는 선수들의 투혼을 앞세워 아시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일본과 중국에 따라 잡힐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은 14개 팀으로 구성된 리그가 있고 축구, 야구 못지않은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아베 총리가 대표팀 경기에 나와 선수들을 격려할 정도다.
중국은 최근 집중적인 투자가 돋보인다. 지난 9월에는 럭비의 종주국인 잉글랜드로 대표팀을 파견, 1개월간 전지훈련을 실시하는 등 최근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이들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전용구장 하나 생기는 것이 이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제천=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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