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에서 물러났던 원로와 중진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여야의 옛 중진 의원들까지 공개적인 활동을 재개하면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이 논의되는 정국에서 지역적 연고나 과거의 정치적 인연 등을 활용해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퇴임 8년 만에 고향인 전남 목포를 방문한 데 이어 4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햇볕정책 지키기’에 나선 DJ의 움직임에 자극 받은 듯 YS, JP도 본격적으로 바깥 활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는 조만간 회동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17일 만찬 회동을 가지려 하다가 일단 연기했다. JP는 최근 “내년 대선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공언한데 이어 22일에는 중앙대 특강을 시작으로 정치권 훈수두기에 나설 방침이다.
여야의 옛 중진 의원들도 자신들의 역할 찾기에 한창이다. 열린우리당 정대철 전 의장은 범여권 정계개편 논의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1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헤쳐모여식 통합신당으로 가야 하며, 노 대통령이 관여할 사항이 못 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부영 전 의장도 9일 중도노선을 표방하는 지식인 모임인 ‘화해상생마당’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전 의장은 “청와대의 독선적 운영에 당이 견뎌내질 못했다”며 청와대를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옛 중진들도 대선주자들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나서고 있다. 최병렬 전 대표는 외곽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용환 전 의원도 자신과 가까운 충청권 인사들과 함께 박 전 대표를 도우려 하고 있다. 윤여준 전 의원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교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청원 전 대표와 홍사덕, 강삼재 전 의원 등도 어느 대선주자를 지원할 지 저울질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원로 정치인들이 조언 수준을 넘어서 정치 전면에 나서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그들의 실제 파괴력은 그리 크지 못할 것이므로 이른바 ‘비광(光)을 팔려고 나서는 격밖에 안 된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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