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바티스에는 55개국 시장을 ‘관리’하는 미혼의 30대 여성이 있다. 김창숙(32) 가브스 마케팅팀장이다. 그는 최근 당뇨 신약 가브스 출시를 앞두고 ‘가브스 성장시장지역’ 마케팅 리더를 맡게 됐다. 성장시장지역이란 미국, 일본, 유럽 5개국을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동유럽 등 55개국이다. 김 팀장은 각국의 마케팅 담당자와 본사 사이에서 마케팅 전략을 조율ㆍ전달하고 제안하는 총괄 책임자다. 그의 전임자가 40대 후반의 스페인 남성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기용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서는 그가 중책을 맡게 된 데는 고교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가서 터득한 탁월한 영어실력이 한 몫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저력은 영어만이 아니라는 것이 이미 검증됐다. 2003년 특허 기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아 관심이 떨어지던 대상포진 치료제 ‘팜비어’의 마케팅 책임(PM)을 맡아 3년 연속 28% 성장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냈다. 2003년 54억원에 불과했던 연 매출은 지금 100억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김 팀장은 이와 관련해 사내에서 상을 6개나 휩쓸었다.
“피부과 의사들과 대대적인 실태조사 사업을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팜비아의 매출이 올라가는 결과를 낳았던 거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내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영업부서에 공(功)을 돌리고 존중하니까 영업 직원들이 스스로 밤 늦게까지 피부과를 돌더군요. 몇 억원을 투자하는 마케팅 전략이 있어도 영업이 ‘돌리지’(실행하지) 않으면 말짱 헛수고거든요.”
김 팀장은 미국 카네기멜론대 화학과, 아리조나대 의대 석사를 마친 뒤 제약사 암젠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2001년 한국노바티스에 취직해 여성이 드문 영업부서를 지원했을 때만 해도 모두들 “제약사 분위기를 영 모른다”고 여겼지만 5년 만에 세계 시장을 무대로 뛰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에서 살아남는 비결을 묻자 김 팀장은 “확실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뛰는 영업부서에는 최대한 존중하는 태도로 다가서지만, 마케팅 부서 안에서 또는 상관에게는 확실히 “된다, 안 된다”를 잘라 말한다. 그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결국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고 말한다.
한국 여성들이 유독 다국적 제약사에서 ‘잘 나가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스스로 글로벌 시민으로 생각하고 산다”고 대답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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