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으로 해서 갈까요, 공덕동으로 갈까요?” 묻는 택시기사에게 나는“내키시는 대로요” 했다가 중림동으로 가 달라고 말을 바꿨다.
참오랜만에 중림동을 보고 싶었다. 이모네 처음 놀러간 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밤에 자려고 눕자, 사방에서 불빛이 쏟아져 들어와 훤한 방의 유리창 너머로 오리온제과 네온사인이 파리하게 빛났다. 4층 건물인‘중림병원’ 맨 위층이 이모네 살림집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아버지가 충격받은 얼굴로 급히 나가셨다. 이모부가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 뒤에도 병원으로 운영되던 건물이었다. 그런데 스무 살 때던가, 혼자 거리를 쏘다니다가 저녁때 불쑥 이모네를 찾아갔다. 층층이 어두운 계단을 지나 4층에가자 문이 잠겨 있었다. 도로 내려와 어두운 현관에 망연히 서 있는데 낡은 왕진 가방을든 한 노인이 들어섰다. 사정을 듣더니, 들어와 기다리라며 그가 복도 끝의 방으로 들어갔다. 병실로 쓰였던 작은 방, 1인용 철제 침대가 벽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지치고 온화한 얼굴로 내게 라면을 먹겠냐고 물었다. 나는 사양했다. 그가 쪼그려 앉아 세면대 밑에 있는 석유곤로에 냄비를 올려놨다. 나는 방을 나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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