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에 부각되는 현상은 국제정치의 국내정치화요, 국내정치의 국제
정치화다.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식참여 문제를 둘러싼 외교안보 엘리트들과 정치 엘리트들 간의 갈등도 같은 맥락이다.
북 핵실험 이후 한달간이나 논란을 빚던 PSI 공식참여 문제와 관련하여 정
부는 일단 부정적 입장을 공식 표명하였다. 국내정치에 능숙한 정치 엘리트들은“PSI 참여는 전쟁, PSI 불참은 평화”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혔고, 국제정치에 능숙한 외교안보엘리트들은 그러한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했다. 6자회담과 개성공단의 추진과 관련해 이번 결정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향후 이로 인한 부정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적 사려가 절실하다.
첫째, 미국 주도의 PSI로인해 북한과 미국이 전쟁상태로 치닫는 경우를 걱정할수록, 이미 러시아와 일본을 비롯한 75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PSI의 다양한 운용과정에 참여하여 한국의 목소리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미 부시 행정부는 PSI가 기구나 조직이라기보다는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한국은 사안별 참여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과거 대영제국의 해적감시 체제를 연상시키는 미국의 PSI 구상은 미국 내에
서도 국제법적 논란을 빚고 있는 사안이기는 하지만, 이미 새로운 제국의 영역을 가늠하는 잣대로 기능하고 있다. 미국은 냉전 이후 피아가 불분명해진 국제사회에서 9^11 테러 주동자들로 대표되는 분명한 적을 대척점으로 하여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위험인식의 공유 정도에 따라 동맹을 재평가하고 있는것이다.
둘째, 6자회담과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서도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에서 PSI는 북한 이슈가 아니라 비확산 이슈다. 북핵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려고 하는 민주당의 입장이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국제법적으로 더 논란의 소지가 많은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까지 참여정부가 추구했던 핵심 이슈를 킹핀으로 놓고 사고해야 한다.
동북아의 비엔나체제 구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6자회담의 성공과 발전, 그리고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의 성공과 점차적 확대에 매겨진 정책적 우선순위에 따라 여타 이슈들을 종속시켜야 한다. 북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으로부터 반입^반출되는 자금과 물자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강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여 한국은 핵물질 이전 가능성에 대한미국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6자회담과 관련해서 보더라도 때로는자기 집안 식구보다 이웃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일때, 집안 문제에 대한 이웃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에 관한 국제적 우려에 부응하면서 남북한 관계에 있어
서는 개성공단, 동북아 국제정치에서는 6자회담의 성공적 추진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시정학(時政學)적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면, 같은 민족으로서의 북한에 대해서도 한국이 처한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적 전략의 대상에는 제국과 민족이 모두 포함된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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