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에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당과 야당 간의 기싸움이 또다시 벌어졌다.
전날 저녁 여당의 직권상정 처리를 막기위해 본회의장 의장석을 기습 점거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 조를 나눠 돌아가며 종일 의장석을 지켰다. 보좌관들과 사무처 당직자 100여명도 본회의장 앞에서 비상 대기했다.
본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우리는 전효숙 문제로 어떤 협상이나 타협을 하지 않겠다”며 “여당이 강행하면 안보 관련 장관 인사청문회도 예정된 날짜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맞서 열린우리당은 이날 잇달아 비상대책위원회와 의원총회를 열어 “절차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지만 당장의 물리적 충돌은 피하기로 했다. 일단은 시간을 끌며 명분을 쌓기로 한 것이다.
대신 우리당은 언제든 처리할 수 있는 채비를 갖췄다. 임채정 국회의장에게 임명동의안의 직권상정은 물론 질서유지권 발동도 요청했으며 소속 의원 139명 전원에게 대기령도 내렸다. ‘합의 표결 처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되, 끝내 안된다면 강행 처리도 불사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김근태 의장은 “국회법이 보장하는 절차대로 안건을 처리하는 것은 국회의 책무”라고 말했다.
민주당, 민노당 등 3개 군소야당도 이날 여당, 한나라당 등과 잇달아 접촉을 갖는 등 중재에 나섰지만 합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반대’ 당론, 민노당은 ‘찬성’ 당론을 정한 상태다.
임 의장도 고민에 빠졌다. 여당의 요청이 있다고 당장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임 의장도 이날 여야 원내대표들을 불러 거듭 합의를 종용했다.
청와대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 내정자에 대해 일단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절차는 밟아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음에도 청와대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윤태영 대변인은 이날 “국회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 했다. 노 대통령이 전 내정자를 일단 재판관으로 임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에 청와대가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는 분석이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전 내정자가 헌재소장도 아닌 재판관 신분으로 출근하는 수모를 견딜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는 일단 ‘타협’보다는 ‘충돌’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여야 모두 물러설 명분과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치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한 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인 우리당은 16일 다시 동의안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휴회 결의가 없었기 때문에 본회의 개최는 언제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전략을 바꿔 표결에 임할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도 “표결에 임하는 것 자체가 위헌적 행위”라며 퇴로를 막아놓고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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