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들어 8번째 부동산대책이 어제 발표됐다. 몇 달 간격으로 이어지는 대책의 민망스러운 남발이 정책의 참담한 실패를 생생하게 대변한다. 11ㆍ15대책은 정부가 그 같은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뭉그러질 대로 뭉그러지고, 부동산 대책 발표를 오히려 투자의 호기로 생각하는 과열된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 정도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처방이라기보다는 다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한 대증적 처방이 많아 부작용이 더 우려된다.
이번 대책은 주택담보대출 규제 확대를 통해 돈줄을 죄고, 공공택지 아파트의 분양가 인하를 통해 가격을 안정시키며, 건축기준 완화와 물량 확대를 통해 공급을 늘리는 것이 골자다. 주택담보 대출규모를 결정하는 총부채 상환비율(DTI) 적용대상을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로 확대하는 금융 규제는 당장 주택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이미 DTI가 적용되는 강남등 투기지역에서 집값 급등 현상이 꺾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한계를 잘 보여준다. 반면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실수요자와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차단하는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
분양가 인하 조치 역시 과도한 분양가 상승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기대효과 못지않게 값이 낮아진 공공택지 아파트에 대한 투기열풍을 초래하는 반작용이 우려된다. 특히 택지지구의 기반시설 부담금을 정부 돈으로 지원해 가격을 낮춘다는 구상은 예산 낭비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민간 개발사업에 기반시설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요 억제만을 고집하는 외눈박이 정책을 버리고 공급 확대를 병행하려는 자세 변화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난개발을 부를 수 있는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 대한 건축기준 완화와 오피스텔 및 주상복합 기준완화 역시 단기적으로는 공급확대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더 걱정된다.
이렇게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우려되는 정책이 나온 배경은 기존 정책의 정당성을 굽히지 않으려는 도그마 탓이다. 무리한 조치를 동원해가며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정작 수요가 몰리는 강남에 대한 재건축 등 규제를 고집하는 것이 그렇다.
독선을 버리고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심정으로 백지상태에서 새 출발을 해야만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정책도 성공할 수 있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는 최대 위협요인은 정책 마비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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