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형 대학 총장’은 성공한 역할 모델인가, 아니면 실패한 모델인가.
연임이 유력시됐던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교수들의 자격심사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면서 CEO형 총장이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CEO형 총장의 공과를 냉철히 따질 계기가 됐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총장 임기만료를 앞둔 일부 대학은 CEO형 총장 영입 방침을 재검토키로 하는 등 ‘어윤대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CEO형 총장의 명암
교육계는 15일 어 총장의 예선 탈락을 두고 다양한 반응들을 쏟아냈다. “CEO형 총장은 결국 실패작”이라는 비판론에서부터 “이상한 선거제도로 어 총장이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론이 엇갈렸다. 이런 가운데 주된 기류는 ‘CEO 총장의 재발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였다. 최근 3, 4년 사이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화가 대학의 화두로 대두됐고, 해결사로 CEO형 총장이 투입됐지만 사후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 총장 중 기업 경영 경험이 있거나 경제ㆍ경영학과 출신인 CEO형 총장은 1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대와 산업대까지 합치면 20명을 초과한다. 서울의 경우 연세대 정창영 총장, 건국대 오명 총장, 광운대 이상철 총장, 서강대 손병두 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 측은 그동안 CEO형 총장이 재정 확충과 글로벌화라는 임무만 완수하면 성공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어 총장만 하더라도 ‘와인 세일’과 마당발 재계 인맥을 통해 재임 기간 중 무려 3,500억원이 넘는 기금을 모금했다. 세계 대학 순위도 150위로 사립대 중 가장 높이 올랐다.
하지만 외부 실적이 화려함을 더해가는 사이 대학 내부는 불만이 쌓여갔다. 바깥 활동에 치중하는 CEO형 총장들이 내부 구성원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개혁과 경쟁력’만 부르짖은 탓이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 “어 총장의 낙마는 자업자득의 측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CEO형 총장이 거쳐갔던 경기지역의 한 사립대 교수는 “기업 경영하듯 경쟁 논리만 주입했던 총장은 재임 기간 내내 구성원들과 갈등만 남기고 떠났다”고 씁쓸해 했다.
●대학의 고민
어 총장 하차로 CEO형 총장을 영입하려던 일부 대학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달 총장 임기가 끝나는 서울 A대는 장관 출신으로 기업 운영 경험이 있는 B씨를 총장으로 영입하려던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CEO형 총장 영입의 장ㆍ단점을 분석하고 있다”며 “재단에서도 재검토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서울 C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재단은 기업 CEO 출신의 외부 인사 1명을 총장으로 선임키로 하고 총장추천위원회를 통해 유력 후보로 올려놓았지만 최종 결정을 미뤘다. 재단 관계자는 “어 총장 문제가 불거져 CEO형 총장을 영입하는 게 과연 나은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학자 출신의 한국외국어대 박철 총장은 “CEO형 총장의 성공은 ‘내치’에 있다”며 “(총장이) 교수 사회를 다독거리지 못하고 밖으로 나돌게 되면 대학 사회는 내홍을 겪게 되고 구성원들의 반발이 클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CEO형 총장에게 대학 시스템 개혁이 가장 중요하지만 교수 등 구성원들과 인간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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