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는 인구 1만9,000명의 작은 도시다. 그러나 매년 2월이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2만여명의 관광객들로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유바리 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유바리영화제는 1990년 탄생했다. 한때 인구가 12만에 달했으나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나락에 떨어진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예산이 1억엔(약 8억원) 내외인 소박한 영화제지만 설국(雪國)의 이미지와 영화제 성격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세계적인 문화 행사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이 도시의 몰락을 막은 일등공신으로 손꼽히던 유바리영화제가 최근 존폐 위기에 처했다. 유바리시가 부채를 이기지 못해 지난 6월 국가에 파산신청을 했고 영화제도 덩달아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게 돼서다. 시가 두 손을 들자 지역주민이 나섰다. 주민들이 기업 스폰서 유치에 나서는 등 영화제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또다시 위기에 빠진 도시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영화제뿐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다시 한번 문화의 힘을 절감케 하는 사례다.
광주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5회를 마지막으로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광주국제영화제가 내달 14~18일 열린다고 한다. 광주영화제는 지난해 집행위원장 위촉을 둘러싼 내분과 문화관광부의 국내영화제 평가 최하위 기록, 광주광역시의 지원예산 전액 삭감 등 대형 악재가 겹치면서 존속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유바리영화제와 마찬가지로 광주에서도 민간이 나섰다. 지역 문인과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대로 끝낼 수 없다”며 영화제 살리기의 구심체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일단 부활의 첫발을 내딛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비대위가 확보한 예산은 1억5,000만원. 영화제 생존에 의미를 둔다고 하나 지난해 예산 16억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제공화국’의 그만그만한 영화제”라는 비아냥 섞인 외부시각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희망의 빛도 밝다. 밋밋한 관제(官製) 영화제의 허물을 벗고 민간이 주도하고 민간이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축제로 거듭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광주영화제가 특화한 빛깔로 국내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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