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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민심 대장정, 청와대가 했어야

입력
2006.11.1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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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중독돼 있다면 대표적 증세는 내성과 금단증상, 두 가지라고 한다. 갈수록 강도가 세져야 중독 상태를 충족시킬 수 있고, 그 상태가 중단되면 특유의 고통스러운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경험자들의 말과 역사의 예를 보면 권력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중단 없는 충족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를 놓게 되면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할 금단 증상을 겪게 되는 모양이다.

● 권력, 금단증상과 도취증상

정통성 없는 권력만이 아니라 민주적 정상 권력이라고 해서 그 속성에 예외는 없는 듯 하다. 얼마 전 남재희 전 의원이 펴낸 회고록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 을 보면 권력의 금단 증상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언론인 출신으로 4선 의원이자 노동부 장관도 역임했던 그는 15대 총선 당시 자신에게 주어졌던 공천을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 포기하고 투옥 경력의 운동권 출신 후배에게 공천을 물려 주고 나서 "대단히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바로 정치를 떠난 데 따른 금단 현상 때문이었다.

증세가 얼마나 심한가에 대해 그는 "아편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아편을 끊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라고 했다. 박정희 시절 10대 때부터 시작해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그리고 4명의 대통령을 겪었던 권력의 세계를 떠나고 난 뒤였다.

"국회의원 4선도 무슨 권력이라고 인이 배겨서인지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무중력 상태에 놓인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자기의 몰골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다. 평상을 되찾는 데 1년쯤 걸렸다."

권력의 자리에서는 오로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권력이 필요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질 수 없고, 밀릴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정책의 불합리와 모순에 눈을 감고, 문책해야 할 사람을 감쌀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자주 본다. 권력에 금단 증상이 있는 만큼 도취 증상도 분명히 나타난다.

집값 파동으로 정권의 뿌리가 흔들릴 지경에 이른 노무현 정권의 권력 기제도 비슷한 데가 있다. 3년 반 동안 있었던 숱한 파동을 관통한 것은 아마도 독선과 아집 같은 것 아니었나 싶은데, 그것은 바로 권력의 과시ㆍ유지를 위한 권력의 행사와 다름없었다.

권력적 투쟁심을 내려 놓고 공복(公僕)의 마음을 회복했다면, 그래서 민심에 눈을 돌리려 했다면 지지율이 10%대로 내려가진 않았을 것이다. 무려 40군데의 재ㆍ보선과 전국의 지방선거에서 완패를 하고도 이를 민의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와 기초를 부정하는 독재적 행태였다.

얼마 전 미국은 민주주의와 선거가 무엇인지를 간단히 알 수 있는 사례를 보여 주었다. 중간선거에서 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즉각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바꾼 것이 그것이다. 한미 두 대통령이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방식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달랐다.

● 독선과 아집이 다다른 실패

부동산 문제에 있어 '대통령 불패'의 정치 정책적 전위였던 건설교통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어제 사의를 표명했다. 민심을 무시하는 권력의 오만이 결국 자기 실패에 다다른 결과이다.

대선 주자들 중 5% 밖에 안 되는 지지율이지만 손학규 전 지사가 지난 달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며 내놓은 여러 말들은 질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민생의 바닥에서 땀 흘리고 뒹굴고 부대낀 몸을 갖고 그는 "국민생활이 피부에 와 닿고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진다"고 했다.

그 현장 어디에 진보나 보수, 대립과 투쟁 등속이 자리할 곳이 남아 있지 않다는 체험기였을 것이다. 통합, 생활, 실용 등의 중요한 메시지들이 민생 장정에서 회복돼 왔다는 점에서 그의 이벤트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 민심 장정이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청와대였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권력의 실패에서 민생과 시대의 요구가 변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대가가 크지만 변화와 각성은 대개 그렇게 오는 경우가 많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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