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불만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시장이 됐네요.”
미국 오리건주 마드라스시에 사는 제이슨 헤일(26ㆍ한국명 재식 헤일)씨는 조그만 술집 주인이다. 그의 특기는 경청(傾聽)이다. 독한 술 한잔에 세상시름을 늘어놓는 손님들의 얘기를 그저 묵묵히 들어줬다. 어언 3년이다. 한국인의 피를 절반(어머니) 이어받은 헤일씨는 늘 공손했다.
주민들은 하나 둘 헤일씨 술집에 모여들었다. 도시 발전을 위한 제안을 해도 꿈쩍하지 않는 시 공무원들에게 실망한 터였다. 헤일씨 가게는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토론의 장이 됐고, 새로운 법안(민원 서류)을 짜내는 민간의 ‘시의회’로 변모했다. ‘친절한 헤일씨’는 손님들이 만든 민원서류를 시에 직접 제출하기도 했다.
사실 마드라스시는 인구가 고작 7,000명인 초미니 도시다. 한 마을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보통 시 인구가 20만명이 넘는다. 그나마 인근 주요 도시인 벤드시에서도 북쪽으로 65㎞나 떨어진 변방이다.
7일 이 조그만 도시의 주민들이 기적을 일궜다. 내세울 것 없는 혼혈 동양인, 그것도 세상 경험 미천한 20대 미혼의 시장을 뽑은 것이다. 바로 헤일 당선자다. 그는 재선에 나서 지지기반도 탄탄한 프랭크 몰튼 현 시장을 두 배 이상의 표차(53.7%)로 눌렀다. 이 도시는 백인이 55.6%, 히스패닉계는 35.7%이다. 헤일씨는 14일 “주민들을 위해 시의 문을 활짝 열겠다”고 약속했다.
헤일씨는 “최근 1억2,000만(약 1,010억원) 달러가 투입된 주정부 교도소가 들어서는 등 발전 여건이 성숙됐는데도 시민 의견에 반하는 시정(市政) 때문에 이웃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출마동기를 밝혔다.
그가 술집에서 주워들은 주민들의 소소한 불평과 제안은 그대로 공약이 되고, 시의 발전계획이 됐다. 또 이웃들을 대신해 시에 민원서류를 내면서 시정이 돌아가는 사정도 익혔다. 그는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 일했는데, 앞으로 2년 임기의 무보수 시장업무에 주 50시간 정도를 할애해 시민과 시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떠듬떠듬 한국말로 내놓는 한마디 한마디가 공손하다.
무엇보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시정이 우선이다. 그는 “노숙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해 추운 겨울 밤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이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강대 등에서 일한 백인 아버지 케빈 헤일씨와 어머니 황명숙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5년간 한국에 살았고 켄터키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뒤 3년 전 마드라스시에 정착, 주점을 운영해 왔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미주한국일보 오리건지국=최준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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