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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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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사촌

입력
2006.11.1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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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사서함을 열어보니 사촌 목소리가 남겨져 있다. 경상도 억양의 부드럽고 나른한 비음. "황인숙씨죠? 나, 황진숙, 진숙인데, 인숙아, 이 메시지 받는 대로 전화 좀 해줘." 웬일일까? 늦은 시간이지만 급한 일인 것 같아 남겨놓은 전화번호를 누른다.

전화벨이 한참 울리도록 아무도 받지 않는다.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다. 그나 저나 웬일일까? 내 하나밖에 없는 여자사촌 진숙이는 나와 동갑이다.

적령기에 결혼해서 유복하게 살고 있는 주부인데, 어쩌다보니 서로 내왕 없이 지내는 사이다. 미국 사는 언니가 3년 전 다녀갈 때 전화를 바꿔줘서 잠깐 통화한 것도 거의 20년만의 일이었다. 진숙이 딸이 우리 집 근처 대학에 다닌다는 것도 그때야 알았다. 그래도 3년만이나 20년만이나 전혀 서먹하지 않았다.

진숙이가 경남 창원이 아니라 서울 강남에 살았다면 왕래가 잦았을까? 우리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진해에 사는 진숙이가 방학을 맞아, 서울 우리 집에 놀러온 것이다. 어느 날 둘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평창동이었던가, 호사스런 저택들에 진숙이가 감탄했던 게 기억난다. '우리 집이 여기라면 얘가 참 좋아했을 텐데.' 왠지 미안했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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