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선에는 도자기 등 각종 유물 수 만점이 실려 있었다. 발굴 조사 결과, 이 선박은 1323년 중국 경원(慶元ㆍ지금의 저장성 닝보)항을 출발, 일본의 하카다(博多)와 교토(京都)로 가던 원나라 선적의 국제무역선이었다.
배에 있던 물건 가운데는 고려청자 7점, 고려인이 사용한 숟가락 2점이 섞여 있었다. 숟가락은 고려 선원이 승선했다는 유력한 증거. 그렇다면 고려청자는 어떻게, 왜 실려있었던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고려청자가 배의 성격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해왔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관장 김성범)이 신안선 발굴 30주년을 기념, 17~19일 개최하는 ‘14세기 아시아 해상 교역과 신안해저유물’ 국제학술대회에서 ‘신안선 출토 고려청자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주제 발표하는 한성욱 해양유물전시관 전문위원은 고려청자가 선창 하부에 적재된 점에 주목한다. 당시 경원은 도시가 크고 물산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고려가 아닌 경원에서 고려청자를 구입, 배에 실었다는 것이다.
신안선은 그렇게 경원에서 화물을 싣고 일본으로 가는 도중 침몰했으며, 고려에는 기항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 위원은 “신안선 유물 중 고려 것이 매우 적은데다, 당시 일본 중국의 문헌에 원-고려-일본의 삼각무역 기록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을 볼 때 중국과 일본을 곧바로 오가던 선박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안선의 고려기항설을 주장하는 측도 많다. 신안선에서 나온 고려청자가 부안, 강진에서 생산된 청자와 비슷하고, 침몰 지점이 중국과 일본의 직항로에서 많이 떨어져 있으며, 항로가 개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김성범 관장도 “신안선의 고려청자가 7점에 불과하지만, 해류 등에 쓸려나간 고려 유물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며 고려기항설을 옹호했다.
일부에서는 동남아산 자단목 및 후추, 동남아 주민이 선호하는 도자기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신안선이 동남아까지 오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큰 지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해양유물전시관의 한 관계자는 “신안선은 14세기 동아시아의 교역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선박이라는 이유로 국내 연구가 너무 미진했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연구가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4세기 아시아 해상 교역과 신안해저유물’ 국제학술대회는 국내 학자 7명, 외국 학자 15명이 참가해 ‘아시아 해상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아시아 해상 교역과 교역품’ 등 5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대규모 학술행사다. 전문가들의 주제 발표에 이어 마지막 날에는 배를 타고 신안해저유물발굴 유적지도 답사한다.
김성범 관장은 “이번 대회가 14세기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형성된 해상실크로드와 해상 교역의 실체를 밝히고 신안해저유물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