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는 400년 전의 슬픈 사랑을 소생시킨 조두진의 새 장편소설이다. 8년 전, 편지가 발견되어 사람들을 울렸던 안동 선비 이응태와 부인의 애련을 다루고 있다. 솔직한 감정표현으로 유명해진 이 편지는 현대어로 바꿔도 애절하다. <당신 언제나 내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p>당신>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 원문을 보면 아내가 남편을 '자내(=자네)'라고 부르는 점이 특이하다. <자내 몬저 가시난고(당신 먼저 가시나요)…> 이 '하소체' 편지는 당시 부부가 서로 '자내'라고 부른 사실을 보여준다. 남녀는 대등한 관계였다. 최근 간행된 '조선의 재산상속 풍경'은 당시 재산에서도 남녀가 균등했다고 밝히고 있다. 자내>
저자 이기담씨는 "17세기까지 남녀평등 분재(分財)의 원칙이 그렇게 철저히 지켜진 나라는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후에 제사 횟수가 늘고 장자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게 됨으로써, 그 전통은 깨지게 된다.
▦ 남녀평등의 전통 회복이 아직 요원함을 말해주는 지표가 발표되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권한척도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권한은 세계 75개국 중 53위다. 재작년보다 15계단이, 지난해보다 6계단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여성의원 비율은 13.4%(평균 18.5%)다.
상위 30개국 평균인 26.7%의 절반 수준이다. 전문기술직도 38%(평균 48.4%)에 그쳤다. 여성 권한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선두이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18위)가 가장 높다.
▦ 남녀 간 호칭도 사회적 인식과 역학구조를 반영한다. 호칭이 왜곡되면 인식도 비뚤어진다. 한국여성개발원은 토론회를 통해 각종 미디어에서 성(性) 평등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성차별적 언어 대신 중성적 표현을 사용하고, 여성비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포츠맨은 운동선수, 처녀작은 첫 작품, 미망인은 고 아무개의 부인, 아줌마는 여성 등으로 바꿔서 사용하자는 제안이다. 호칭과 언어는 남녀평등으로 가는 출발선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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