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병직 건교부 장관의 사퇴는 청와대가 그를 경질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해 수리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13일 추 장관을 교체할 뜻이 없음을 내내 강조했다. 추 장관이 후속 부동산 대책을 만들고 있는 마당에 사퇴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태도였다. 청와대 당국자는 “특정인을 희생양 삼아 상황을 모면하긴 쉽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며 “지금은 집값 불안 등을 잠재울 확실한 대책을 만들고 국민신뢰를 되찾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알려진 대로 추 장관이 사표를 낼 경우엔 사정이 달라질 전망이다. 청와대로서도 정책실패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제출된 사표까지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스스로가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불문하고 쏟아지는 사퇴압력에 더 이상 정상적 업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것이 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인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날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며 사퇴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의 질문에 대해서다. 평소 같으면 야당 의원들에게는 한 치도 밀리지 않았을 그다. 한명숙 총리 역시 부동산 정책팀 교체요구에 대해 “참고하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놓아 여권 내 기류가 변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관계자는 “추 장관이 오늘 한 총리를 통해 청와대에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교체 가능성을 계속 부인한 것은 문책 경질의 수순을 밟을 경우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기조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식의 잘못된 사인을 보내 부동산 시장에 보내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여론에 떼밀려 장관을 교체하는 것을 극구 싫어하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추 장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의 결단에 의해 자진 사퇴하는 것임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실 청와대가 마냥 추 장관을 감싼 것은 아니었다. 쉬쉬했을 뿐 최소한 연말연초 내각 개편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엄존했다. 일각엔 15일 부동산 대책 발표에 이어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명분으로 추 장관을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청와대는 ‘지금 집을 사면 낭패’라는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이백만 홍보수석에 대해선 “인책 해야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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