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젊고 잘 생긴 의대생이었던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상을 받으러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고(故)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鏑木玲子ㆍ61)씨는 13일 서울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5월 숨진 남편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더듬어 나갔다.
이 전 총장은 파라다이스그룹(회장 전필립)이 제정한 ‘2006 파라다이스상’ 특별공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저세상으로 떠난 남편을 대신해서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가부라키씨는 인터뷰 내내 목이 메는 모습이었다. “아들이 없었다면 저는 죽었을 거예요. 그만큼 남편에게 의지를 많이 했어요. 그이는 제 봉사활동의 가장 큰 지지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국제기구의 수장과 그 아내이기에 앞서 평생을 함께 봉사의 길을 걸어온 동지였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한센병(나병) 환자촌인 경기 안양시 나자로마을에서 자원봉사자로 만났다. 이 전 총장은 서울대 의대 재학생이었고, 가부라키씨는 수녀가 되기를 원했던 영문학도였다.
“한국에 봉사활동 온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반대해서 의지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많이 의지했어요.‘아 이 사람은 정말 봉사정신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다’하는 감동도 있었구요. 제가 몸이 많이 아팠을 때 남편이‘잘 돌봐 주겠다’고 해 수녀가 되겠다는 결심을 바꿨죠.”
1979년 결혼한 두 사람은 베푸는 봉사의 삶을 이어갔다. 가부라키씨는 5년 전부터 남미 페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가난한 여성들에게 뜨개질과 자수를 가르쳐 이제는 미국 일본에 판매까지 한다. 5년 전 1인당 10달러 정도이던 수익금도 700달러까지로 늘었다. 가부라키씨는 이번 파라다이스상 상금도 모두 봉사활동에 쓸 계획이다.
이 전 총장의 삶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돌봐주는 사람이었어요. 모든 것이 감명 깊었기 때문에 하나만 거론하면 남편이 싫어할 거예요.” 가부라키씨는 이 전 총장이 러시아의 에이즈 고아 시설을 도운 얘기 등과 함께 한ㆍ일 부부의 어려웠던 점 등을 이야기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WHO에서 일했던 영국인 데스몬드 에브리씨가 그를 기리는 책을 쓰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발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부라키씨는 14일 파라다이스상 시상식에 참석한 뒤 15일 대전 국립현충원의 이 전 총장 묘소를 찾는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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