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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정치는 실험 아닌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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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정치는 실험 아닌 실천이다

입력
2006.11.1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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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이 잎을 거두는 조락(凋落)의 계절에, 정치에서만은 새순 돋는 소리가 요란하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다음 달쯤의 신당창당을 선언했고, 극우정당을 표방하는 '시스템21'도 내년 초 창당할 예정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역시 추락하는 지지율을 회복하여 거듭나기 위한, 정계개편 몸짓으로 부산하다. 가뜩이나 정치 과잉인 이 사회가 대통령 임기 1년 여를 남겨두고, 지겹도록 이상열기에 휘말리게 되었다.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 현대정치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들이 명멸한 역사였다. 박정희 전두환씨가 각각 쿠데타에 의해 탄생시킨 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 3당 합당으로 태어난 김영삼씨의 민주자유당, 김대중씨의 새천년민주당 등으로 이어졌다.

일천한 정당사 만큼 정당이 이념적 토대를 구축할 시간도 짧았다. 정당에 따라 자유와 민주, 정의, 개방성 등 명분 있는 이념이 표방되었으나, 필요할 때는 언제나 깃발이 바뀌었다.

● 우리당의 정계개편 움직임

노무현 대통령이 속한 우리당도 해체의 운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당이 3년 전 내세웠던 가치는 국민 정당과 지역주의의 극복이었고, 개혁을 희구하던 국민은 그들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자신의 정치 실험이 실패로 끝났고, 4대 입법을 밀어붙인 것이 무리였다고 한탄하고 있다. 참여정부와 함께 가던 우리당의 목표는 정치 개혁이 아니라 정권 유지였던가.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정치의 목표는 모든 사람의 자유와 복지의 실현에 있다. 정치가 항구적인 이상ㆍ신념ㆍ정의의 실천이 아니라 풍향에 따른 깃발 바꿔 들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권자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니며, 선의라 하더라도 정치에 실험이 있을 수 없다.

잦은 깃발 교체는 권력욕을 가리기 위한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지극한 마음으로의 실천, 오류가 있을 때의 겸허한 반성, 냉철한 정책수정이 있을 뿐이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은 그 자체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두 번이나 패한 뒤에도 여당 못지않은 힘을 과시해 왔다. 반면 개혁 기치를 든 정당은 일시적 승리를 하더라도 보수당보다 훨씬 치밀한 정책과 단결력, 실천력을 유지해야 유권자의 지지를 오래 받는다.

이 점에서 현실정치의 패자가 되어 한탄하는 우리당 간부들의 감상도 보기 흉하지만, '실험'조차 않고 반사 이익을 누리려는 한나라당이 더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1년 여가 남았으니 아직 예단할 일은 아니지만, 대선과 관련된 여론조사 상으로는 한나라당 주자들이 멀리 앞서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당 간부들은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결연한 자세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정치인답다.

'정치사에 크게 기록될 만한 의미 있는 정치실험'이라는 우리당 창당은 '호남을 제외 시킨 개혁'이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김대중씨로 상징되는 '호남+개혁'에서 '개혁'이 독선적 태도로 분리돼 나간 결과, 지금처럼 무력한 상태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설령 궁색한 선택으로 정계개편에 의지하더라도 이제 좀더 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절실하다. 뚜렷한 노선과 정책을 지닌 정당으로 개편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정당정치의 정착은 백년하청이다. 정책보다 정권장악을 생각하는 정당이라면 국민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 분명한 노선과 정책이 먼저

오늘날의 정치는 대개 정당정치에 의존하고 있으며, 세계에 500여 개가 넘는 정당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만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정당이 21세기 안에 소멸되고 그 자리를 시민단체 등이 채울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정치인이 명석한 정치적 노선과 신념을 실현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차라리 겸허한 마음으로 다음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다. 정치와 민심도 계절처럼 순환하기 때문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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