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정감사가 끝났다. 한 일간지는 사진으로 보는 국감이라는 타이틀로 ‘사라지지 않는 삿대질’ ‘국감도 뒷풀이?’ ‘의원 모시기 작전’ ‘답변 고심하는 피감기관장들’ ‘피감기관 공무원들의 죽치기’ 등을 보도했다. 국감이 도대체 무슨 성과가 있으며 과연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 그리고 국감으로 오히려 국정이 마비되는 현실을 꼬집는 내용이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와 같이 20일 기간을 정해 놓고 국정 전반을 감사하는 나라는 없다. 이는 지난해 미ㆍ일ㆍ독ㆍ불 등이 참가한 한국헌법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확인된 바 있다. 국회는 국민대표기관으로 국정 전반을 감시ㆍ통제하지만 감사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3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국회의 감시통제는 일년 내내 본회의에서의 대정부질문, 상임위원회에서의 정책 질의와 자료제출 요구 및 특정 사안에 대한 감사원 감사 청구, 국정조사권 발동 등으로 충분하다. 현실적으로 507개나 되는 피감기관을 20일 동안 감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고 불가능한 것이다. 바쁜 공무원들과 관계인들을 불러세워서 과연 얻은 것이 무엇인가? 결국 국력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17개 상임위원회에서 각 의원에게 할당된 15분 정도의 시간으로는 의정활동 과시용으로 백화점식 문제점 지적 정도에 그치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을 위해서 국회와 행정부 및 관련기관이 두 달 정도를 소모하는 어리석음을 매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국감 내용의 반 이상이 정책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로 입법과 효율적인 예산심의를 위한다는 국감의 중요 목적을 무색케 하고 여야 감정의 골만 깊게 만든다.
그리고 최근 들어 국감의 본질이 왜곡되어 증인 자리에 공무원과 공기업인 대신에 일반기업인이 대거 출석하여 ‘기업감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단지 국회의원들이 호통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업경영의 장애와 세계적 기업의 국제신인도까지 우려된다.
사실 이번 국감에는 북한 핵과 바다이야기 등 사행산업 문제, 민생 4대 불안(일자리 노후 교육 주거)등 현안이 심도있게 검토되기를 기대했지만 별 성과가 없는 듯하다. 이럴 바에야 국감기간에 수박겉핥기 식이라는 예산심의를 보다 철저히 하는 것이 국회 본령에 충실하고 실속이 있어 보인다.
국감에서 바람직하다고 하는 소위 ‘정책감사’는 따지고 보면 각 상임위원회 정책질의 등을 통하여 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정식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 구체적으로 파헤쳐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회 재적 4분의 1 이상으로 국정조사를 요구할 수 있으나 실제 발동되기 위하여는 국회 본회의 일반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독일의 경우는 4분의 1 요구로 그대로 발동되어 국회 국정 통제의 실효성을 기하면서 다만 국정조사 결과 채택은 본회의 의결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세계적인 국회 운영의 실태로 볼 때 국정감사가 의정활동의 꽃이라든가 국회의원의 특권이라는 생각은 이제 불식돼야 한다. 과거 부패의 고리였던 국정감사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국회의원들이 얼굴내기 중압감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국회의원은 새로운 생산적인 국회 운영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각자 자신있는 분야에서 진정한 국리민복을 위한 구상에 몰두해야 한다. 그것만이 정치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다.
이관희 / 경찰대 교수ㆍ전 한국헌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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