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 시위’의 시험대로 주목받았던 12일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가 교통혼잡 등 별다른 혼란 없이 치러졌다. 민주노총 노동자 3만여 명(경찰 추산)은 서울시내 9곳에서 사전 집회를 연 뒤 오후 3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집결해 대규모 집회를 가졌지만 ‘신속한 차로 행진’ ‘버스 지하철 등을 이용한 이동’ 등 신고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지켜 준법 시위 정착의 전망을 밝게 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 시위문화 변화 공감대 형성되나
“10여 년 집회와 시위에 참여했지만 경찰에 신고한 행진 시간을 지키려고 이렇게 신경 쓰기는 처음이다.” 이날 오후 남대문시장 앞 도로. 민주노총 공공연맹 이근원 조직실장은 시위행렬 앞뒤를 바삐 오가며 처지는 시위대를 채근하고 무전기로 연신 다른 지도부와 연락을 취했다. 서울역광장에서 퇴계로 회현동 한국은행 소공로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향한 공공연맹 5,000여 명의 행진은 사실상 이날 집회에 유일한 차로 이동이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전 집회를 연 덤프트럭ㆍ화물연대 1만여 명은 지하철1호선 종로5가역까지 차로3개를 이용해 행진하기로 신고했지만 공원 바로 옆 이화로터리까지만 걸은 뒤 지하철을 탔다. 그나마 덤프트럭연대 5,000여 명은 오후 7시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열릴 ‘전국 건설ㆍ운송노조 총파업 출정식’준비를 이유로 행진을 그만 두고 바로 버스에 올랐다. 교통 불편에 대한 여론을 고려,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9개 사전집회에서는 신고 시간을 지키기 위해 일부 행사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 준법 시위 정착의 계기로 삼아야
휴일 도심 집회를 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아직은 냉소적인 편이다. 회사원 김모(28)씨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시민들의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겠느냐”며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날 준법 시위로 도심 교통 상황은 일부의 우려와 달리 평소 휴일보다 나았다. 서울경찰청 교통상황실 전광판에도 정체나 서행 구간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역과 남대문시장 근처에서 차들이 가다 서다 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교통 흐름이 원활했다”며 “별다른 도심집회가 없었던 11일보다 오히려 교통체증이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 옆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자원봉사자 정순진(64)씨는 “백화점 세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고, 택시기사 박모(47)씨는 “길이야 좀 밀리지만 이 정도라면 우리 사회가 용인해야 할 수준”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찰과 민주노총도 비슷한 분위기다. 현장 경찰 지도부는 “시민들이 자동차 이용을 최소화하고 민주노총도 준법 시위를 위해 적극 협조하면서 어느 때보다 순조롭게 끝났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 시민 시위대의 완벽한 하모니(조화)”라고도 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집회 시위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일상의 여유 오픈 콘서트 휴(休)’가 공연 1시간 전 취소됐다. 서울시는 “새벽 무대설치 중에 민주노총 관계자들과 몸싸움이 일어나 6명이 다쳤다”며 “공연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부득이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문화행사 때문에 집회를 금지하거나 시간ㆍ장소를 변경하도록 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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