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후 유럽은 서구 문명에 회의를 느낀다. 그리스 조각상 같은 고전적 아름다움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 유럽 미술은 새로운 미감 탐색에 나선다. 이 때 등장한 위대한 작가가 프랑스의 장 뒤뷔페(1901~1985)다. 그는 포도주 도매상을 하다 41세때 화가로 변신했다.
그는 어린아이의 서툰 그림이나 정신병자의 솔직한 그림에 감동했으며, “단지 즐거움을 위해 스펙터클을 만들고 축제를 벌이는” 광대처럼 작업하며 한평생을 살았다. 첫 개인전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추하다고, 전통을 경멸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사람들이 추하다고 생각한 것, 망각하고 들여다보지 않은 것들 중에도 경이로운 것들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중략) 중요한 것은 정직함이다. 베일을 걷어내고 가식도 걷어내야 한다. 모든 사물을 우선 최악의 상태로 발가벗길지어다!”
이런 혁신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르 브뤼’(Art Brut)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원초적 예술을 가리키는 이 말은 문명의 손길로 수없이 정제된 ‘문화적 예술’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그는 “이성과 논리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본능, 열정, 변덕, 격렬함, 광기의 가치를 존중하는 예술을 지향했다.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온갖 재료와 기법을 맘껏 사용해 일상의 풍경을 아이처럼 무심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을 휩쓴 ‘앵포르멜’(비정형) 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덕수궁미술관에서 대규모의 뒤뷔페 회고전 ‘뒤뷔페-우를루프 정원’이 10일부터 시작됐다. 뒤뷔페재단과 퐁피두센터, 파리 장식미술관, 일본 도요타시 미술관 등 16군데에서 빌려온 그림, 조각, 드로잉, 석판화 등 총 235점이 미술관을 전부 차지했다. 이는 퐁피두센터의 2001년 뒤뷔페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후 최대 규모다. 뒤뷔페의 전 생애에 걸친 예술적 행로를 파악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전시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뒤뷔페재단의 협력과 프랑스대사관의 후원으로 성사됐다.
전시실은 시기별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제1 전시실은 1942년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나서기 전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보이는 작품과 초기 앵포르멜 시대의 작품을 모았다. 제2전시실(1952~1960년)은 온갖 재료와 기법의 실험장이다. 그는 모래, 자갈, 머리카락, 스폰지 등 별의별 재료를 다 써서 재료 스스로 말하도록 작품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우를루프’(L’Hourloupe) 연작은 제3 전시실(1961~1974년)에 있다. ‘우를루프’는 프랑스어로 ‘소리지르다’ ‘새가 지저귀다’ ‘늑대’ 등 여러 의미를 연상시키는 말로, 이 단어의 복잡하고도 유쾌한 어감이 화폭 가득히 난무한다. 뒤뷔페의 말년을 만나는 제4 전시실(1975~1984년)의 작품은 우를루프의 동화 같은 환상의 세계에서 미끄러져 나와 철학적인 세계로 이동한다.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그의 말대로 ‘제2의 실재’를 찾아 무한 경계로 나아간 이 시기의 작품은 그가 외계인이 아닌가 싶을 만큼 자유롭고 깊다.
전시는 내년 1월28일까지. 관람료 어른 1만원, 청소년 5,000~7,000원. (02)3680-1414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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