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중간선거 참패 직후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한 것은 부시 정권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결정적 퇴조를 의미한다. 군사력을 앞세운 선제 예방전략 등 패권주의적 대외정책을 추구해온 네오콘들은 이라크전이 수렁에 빠지면서 그 동안 계속 힘이 빠져왔으나 럼스펠드 장관의 퇴장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특유의 독선적 오만함으로 이라크전 등 국방정책 뿐 아니라 부시 정권 대외정책의 전체적 기조를 형성하는데 핵심 축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부시 정권 내에 남아 있는 네오콘 세력으로는 딕 체니 부통령과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 및 비확산 담당 차관 정도가 꼽힌다. 좀 더 외곽에는 존 볼튼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아직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미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던 체니 부통령도 럼스펠드 장관의 지원이 없으면 그만큼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부시 정권 내 온건파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는 상황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부시 정권 1기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시절에는 네오콘의 일원으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완전히’ 전향한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현재는 체니 부통령과 맞서는 인물로 부각돼 있다. 여기에다 라이스 장관의 후임으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스티븐 해들리 현 보좌관은 라이스 장관의 영향력 범위 내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해들리 보좌관이 또 한 사람의 ‘국무부 부장관’에 비유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민주당의 상ㆍ하 양원 장악 이후 볼튼 대사도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이 있자 볼튼 대사의 상원 인준을 포기하고 상원 휴회 중 임명이라는 편법을 강행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기 때문에 내년 1월 임기 만료 이후 그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앞서 네오콘의 ‘교사’로 통하던 폴 월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은 세계은행 총재로 옮겨간 지 오래고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은 이른바 ‘리크 게이트’에 연루돼 낙마했다. 네오콘의 상황이 더 심각한 것은 서로 내부에서 책임 공방이 벌어지면서 분열 양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 라이스 장관 등 온건파들이 자신의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호기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러한 온건 정책이 라이스 장관의 인기에 걸맞게 성과를 낼 수 있느냐 인데 이런 점에서 라이스 장관은 기회를 맞은 동시에 시험대에 서게 됐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